매일신문

[야고부] 초고속 ‘폰 뱅크런’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급속한 파산에는 스마트폰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WSJ는 지난 12일 '실리콘밸리가 만든 체계에 실리콘밸리가 당했다'는 기사에서 소셜미디어(SNS)가 번개 같은 속도로 각종 소식을 퍼뜨려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SVB의 유동성 위기는 SNS를 통해 전파됐다. "나도 SVB에서 돈을 인출했다"는 메시지들이 퍼지면서 불안이 커졌다. 너도나도 스마트폰 뱅킹 앱에 접속해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불과 36시간 만에 420억 달러(약 55조 원)가 인출됐다. 결국, 미국 금융당국은 지급 불능 등을 이유로 SVB를 폐쇄했다.

'뱅크런'(bank run)은 거래 은행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거나 거래 은행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 나타난다. 우리 국민들도 뱅크런을 경험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때이다. 은행 부실 등이 소문나면 은행 점포는 예금을 빼내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난장판이 된다. 그러나 이번 SVB 사태는 과거의 뱅크런과 달랐다. 은행에 뛰어가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만 누르고 밀면서 예금을 인출했다. 동시다발로 순식간에 뱅크런이 발생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은행 부실 등 유사시 모바일 앱을 이용한 초고속 뱅크런 가능성이 있다. 국내 시중 은행의 일일 이체 한도는 5억 원(보안 1등급 개인 고객 기준)에 이른다. 국내 인터넷 뱅킹 이용자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일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2022년 말 국내 은행의 인터넷 뱅킹(모바일 뱅킹 포함) 등록 고객 수는 2억704명으로 전년 말 대비 8.5% 늘었다. 2022년 중 인터넷 뱅킹을 통한 자금 이체·대출 신청 서비스 이용 건수는 일평균 1천971만 건, 금액은 76조3천억 원. 이는 전년보다 각각 13.8%, 8.2% 증가한 수치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리스크가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SVB 사태와 같은 초고속 폰 뱅크런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시장은 유동적이고 글로벌하다. 정부는 뱅크런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금 전액 보호' 조치를 고려할 수 있도록 점검에 나섰다. 뱅크런을 예방하는 최상책은 신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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