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진도준과 전우원

출처=JTBC 드라마
출처=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컷, 전우원 씨 인스타그램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최근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 씨가 할아버지 및 일가의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의혹을 SNS로 폭로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문득 떠오른 건 지난 연말 방영돼 큰 인기를 얻은 웹소설 원작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물론 주인공 진도준을 비롯해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관계가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중심에 할아버지(전두환 전 대통령, 진양철 순양그룹 회장)가 있고, 자식들(똑같이 3남1녀)에게 사업 분야를 나눠 재산이 전해진 점, 여배우 출신 며느리의 존재(박상아 씨, 진도준 母) 등이 닮았다.

똑같은 건 '돈'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돈의 이름은 '비자금'이다. 드라마에서는 진양철 회장이 해외에 조성한 비자금을 둘러싸고 손자 진도준이 생사는 물론, 과거·현재까지 넘나든다. 현실에서는 또 다른 손자가 할아버지의 비자금 은닉 의혹을 폭로한 상황이다.

진양철 회장은 기업 운영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가를 자기 기업처럼 운영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극 중 사실 및 의혹이 같으면서도 또한 다르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모든 사실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전우원 씨가 지난 13일부터 폭로를 이어나가자 16일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의 발언을 살펴보고 있다. 범죄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라며 수사 여부 검토를 시사했기 때문에, 역사가 모르고 지나갈 뻔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이제 알려질지 주목된다.

그러면서 지난 1997년 대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내란·뇌물수수죄로 선고한 추징금 2천205억 원 가운데 현재까지 추징된 1천283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41%(922억 원) 숨은 비자금을 찾아 추징할 수 있을지 시선이 향한다. 그에게 함께 내려진 무기징역에 대해서는 사면이 이뤄졌지만, 면제되지 않은 추징금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죗값 치르기'의 맥락에서 관심이 꾸준하다. 2013년 만들어진 '전두환 추징법'과 국회에 계류 중인 '전두환 추징 3법'에도 다시 관심이 향할 만한 부분.

전우원 씨가 주목받는 좀 더 중요한 이유는 "저는 제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저희의 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고 밝혀서다.

함께 군사 반란을 일으킨 육사 친구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고인이 살아있을 때부터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18 피해자들을 만나며 아버지 대신 사죄했다. 이런 모습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선 좀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손자가 직접 나서 보여준 것.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저희 가족 모두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하고, 추가 조사에도 성실하게 임하겠다"던 말은 전두환 전 대통령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별다른 실체를 만들지 못했다.

드라마 속 진도준은 비록 복수심이 발로였고 판타지의 도움을 얻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할아버지의 순양그룹을 무너뜨려 그 실체를 세상에 낱낱이 드러내고 만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성공한 기업의 전형으로 전해졌을 순양그룹에 대해 '잘못됐다'고 역사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우원 씨도 대한민국 현대사에 그와 닮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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