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책임 회피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스탈린은 매우 비열했다. 자신이 결정해 집행한 정책이 정치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낳으면 그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지웠다. 독일 군부와 교류한 소련 장성들을 숙청한 게 대표적인 예다.

소련과 독일은 1921년부터 군사 교류를 개시해 1926년 정식 군사협력 조약을 맺었다. 소련은 공산혁명의 진원지로, 독일은 1차대전 전범국으로 국제사회의 외톨이 처지였기에 서로에게 이끌렸던 것이다. 이런 군사협력에 따라 소련군 장성들은 1925년부터 독일에 파견돼 독일군 장성들과 전략, 전술, 병참 지원 등을 놓고 긴밀히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들은 소련을 독일 식민지로 만들려고 독일과 결탁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됐다. 이들은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혹독한 고문에 있지도 않은 음모와 가공의 가담자들을 줄줄이 불었다. 기가 막히게도 이들이 독일과 내통했다는 증거는 독일을 여러 번 방문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의 결정이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소련 장성들의 독일 파견을 독일과 결탁이란 음모의 증거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독일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스탈린은 1937년 독일과의 무역 재개 회담을 시도했으나 그와 병행하는 정치 회담을 히틀러가 거부하면서 접어야 했다. 이런 실패의 흔적을 지우려고 스탈린은 소련 측 협상자들을 처형·투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비서실장으로, 얼마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전 모 씨의 유서가 이런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유서에는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나. 저는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억울하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자신은 시키는 대로 일한 실무자이고 최종 책임은 이 대표에게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백번 맞는 소리다. 그런 점에서 유서는 '이 대표가 책임을 인정했다면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전 씨의 유서는 이 대표에게 양심이 있느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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