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 초대석] ‘잔인한 4월’을 향해, 봄~날은 가안~다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국제 정치는 '강인한 생물'이다.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 웬만한 국내 정치로는 흔들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일본 총리를 만나러 가는 날 북한이 쏴 준 화성-17형과 귀국 시 야권이 펼친 벌떼 공격은 '역(逆)갓끈 전술'을 가능케 할 축포로 보인다.

'반일의 위력'을 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면 지지율 반등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이렇게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북한이 '처음'으로 화성-17형 발사를 성공시켰으니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졌다며 방일을 취소하고 청와대 벙커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 한순간 위기가 고조된 듯한 인식이 든다. 긴급히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난 뒤 일본 대사를 불러 일본도 겨냥한 안보 위협을 거론하며 방일 취소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면, '문비어천가'가 난무할 것 같기도 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이 있기 직전 트럼프는 "내 친구 아베가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아베가 시인하자 일부 일본인은 아베를 '미국의 강아지'로 비꼬았다. 덕분에 김정은은 태양호(전용 열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관통해 베트남을 향했다. 그렇게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영변 말고 이것도"를 주장했다. 북한은 영변에 1963년부터 2㎿, 1985년부터 5㎿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해 왔다. 초기형 우리 원전의 설계수명은 30년이었다. 북한도 이들의 가동을 중단하고 2008년 냉각탑을 폭파했다.

폐로한 원자로는 해체해야 그 부지를 다시 쓸 수 있다. 김정은은 한미가 내놓을 돈과 기술로 해체까지 할 요량으로 영변을 위주로 한 '스스로 없앨 북핵 리스트'를 제시했는데, 트럼프는 코웃음 치며 '쌩쌩하게 돌리고 있는 다른 것'을 요구했다. 김정은이 대꾸를 하지 못하자 그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 하노이를 떠났다. 서울의 문 대통령은 한동안 이 소식을 믿지 않으려 했다.

김정은은 하노이의 노딜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계속 친서를 보내고 시진핑에게도 부탁을 해, 그해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를 판문점으로 오게 했다. 문 대통령은 이 회담에 끼고자 태극기를 들고 판문점으로 달려갔으나, 김정은이 강력히 거부했다(폼페이오 회고록). 이 회담에서도 트럼프는 노딜을 했는데,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문 대통령은 회담장을 나온 두 사람을 붙잡고 3자 정상회담을 한 듯한 모습을 만들었다.

2018년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결정된 직후 시진핑은 김정은을 초청해 특별회담을 가졌고, 싱가포르로 타고 갈 비행기를 제공했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에도 김정은을 '모셔' 환담했다. 이 대접이 트럼프의 노벨상 후보 피천과 어우러져 김정은의 총기를 흐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판문점 노딜' 후에야 정신을 차린 김정은은 모든 책임을 문 대통령 탓으로 몰려는 듯 북한 매체로 하여금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란 비난을 퍼붓게 했다. 남북 문제는 여정에게 떠넘기고 남북 연락사무소는 폭파시켰다.

남북 관계가 막혀 버리자 문 대통령은 '문모닝'의 박지원을 국정원장에 임명해 탈북한 북한 어민을 송환하고 해수부 공무원 피살을 무시하는 등 특단의 수를 썼으나,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한 날 중국은 시진핑이 국제사법재판소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푸틴을 만나러 러시아를 국빈방문한다고 밝혔다. 예상보다 일정을 한 달여 당긴 것인데,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의식한 것이 확실하다. 한일에 이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또 뭐가 나올지 모르니, 내 편을 늘려 놓아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는 북한에도 공을 들이고 있으니, '따로국밥'이던 북중러 관계도 강화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케미가 상시 연합군을 만들고 있는 한미와 미일 동맹을 앞설 순 없다. 그런데 한일 관계까지 이어졌으니 북중러도 뭉친다. 냉전은 세계화화는 것이다. 3월 초까지 우리의 무역적자가 20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미국 SVB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까지 예상된다. '죽고 사는' 문제에 이어 '먹고사는' 문제까지도 우리는 흔들리게 된 것이다.

4월 미국을 방문하는 윤 대통령이 핵 공유나 그에 준하는 성과를 받아온다면 북한은 물론 이 땅의 종북 세력 입지는 크게 좁아진다. 그런 만큼 저항은 강력해진다. 그래저래 잔인해질 수밖에 없는 4월이 오고 있다. 쌍방울 게이트 등 여러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반일의 기치를 들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봄~날은 가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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