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누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영남대 중앙도서관 앞뜰에 있는 故 손영자 여사 흉상. 영남대 제공
영남대 중앙도서관 앞뜰에 있는 故 손영자 여사 흉상. 영남대 제공
김태진 사회부 차장
김태진 사회부 차장

2012년 고(故) 손영자 여사의 흉상이 영남대 중앙도서관 주출입구 옆에 세워졌을 때 반대 목소리를 낸 이는 없었다. 2011년 66세의 나이로 별세한 손 여사는 평생 모은 돈을 학교와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 11억7천여만 원이었다.

영남대에 전한 건 6억4천만 원.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불린 게 아니었다.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시장에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치 않으며 모은 돈이었다. 당뇨로 투병했지만 치료비조차 아꼈다.

최외출 영남대 총장은 장학금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다. 1955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 장판이 없어 볏단 위에서 잤다고 했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동년배와 함께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건 수순이었다. 그가 '새마을 장학생'으로 1977년 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이었다. '새마을 전도사'라는 별칭은 그래서 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영남대 총장실 접빈 공간 정중앙에 설립자 박정희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박정희는 그러나 그의 모교인 경북대(대구사범학교)에서는 다소 다른 대접을 받는 중이다. 1971년부터 옛 사범대학 건물 로비 정중앙에 있던 그의 흉상 부조상이 2021년 건물 철거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2022년 지상 8층짜리 신축 사범대학 건물이 준공되는 사이 일어난 일이다.

옛 사범대학 로비 중앙에 있던 가로 1.5m, 세로 1.5m 크기의 흉상 부조상은 로비 바닥에서 2m 정도 위에 붙박여 있던 터라 건물에 들어선 모든 이는 그를 우러러봐야 했다. 로비 층고가 높았기에 가능한 구도였다. 흉상 부조상을 품고 있던 건물이 철거되면서 '마땅히 걸어둘 공간이 없어'져서야 반세기 만에 부조상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사범대학 교수들은 흉상 부조상 처리를 두고 회의를 했다고 한다. 일단은 적당한 곳에 보관했다가 다시 걸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내걸 만한 적절한 공간은 2년이 되도록 생기지 않고 있다. 흉상 부조상은 현재 경북대 박물관 제2수장고에 있다.

경북대 발전기금 홈페이지. 6억7천500만 원을 기부했다는 박철상의 사진도 보인다. 경북대 홈페이지 캡처
경북대 발전기금 홈페이지. 6억7천500만 원을 기부했다는 박철상의 사진도 보인다. 경북대 홈페이지 캡처

경북대가 기리고 있는 인물 중에는 한때 '청년 버핏'으로 일부 언론이 찬사를 보냈던 박철상 씨가 있다. 2017년부터 경북대 홈페이지는 '기부금 골드클럽'이라며 6억 원 이상의 학교발전기금을 낸 그의 '공로'를 대내외에 인정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정재형 화신테크 회장, 한삼화 삼한씨원 대표, 김상태 평화발레오 대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박철상 씨는 그러나 법적 처벌을 받은 바 있다. 투자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인지도를 높여 투자자를 그러모았고 그들의 돈으로 장학기금을 쾌척했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이었다. 학교 측에 물으니 "기부금을 실제로 받았으니 홈페이지에 사진을 걸어둔 것"이라 했다. 그의 기부금을 받았던 다른 단체들과 대처 방식이 판이하다. 그가 기부금을 전했다고 알려진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등에서는 그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그 조직의 정신이자 비전으로 볼 수 있다. 제아무리 많은 기부금을 냈더라도 과정이 석연치 않다면 받는 이들도 불편하다. 의미 있는 돈으로 공부한 학생이 더 훌륭해진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부끄러운 돈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장학금의 출처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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