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봄이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연분홍, 초록, 샛노란빛의 대형 캔버스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명미(73) 작가는 노크 소리도 듣지 못할만큼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가 요즘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건 대형 전시들을 앞두고 있어서다. 4월 우손갤러리와 아소갤러리 개인전, 5월 수성아트피아와 부산현대미술관 단체전이 예정돼있다.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 창립 멤버로 참여한 이후 그림 외길 50년. 1993년 국내 여성 화가로는 처음으로 일본 도쿄화랑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며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여성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쯤되면 '충분히 했다. 이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할 만도 한데, 그는 오히려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또 설레게 한다.
"우리나라 단색화 1세대 박서보, 하종현 등의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건 70세부터예요. 나는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20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다고 할까요. 물론 때마다 최선을 다해왔지만, 이제는 그것을 터트려야할 때죠.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꿈도 커지고 작품 크기도 커지네요."
231㎡ 규모인 그의 작업실은 대구 수성구 범물동의 한 상가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2004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20년간 이곳에서 희노애락을 겪어냈다. 작업실에서는 작업에 집중하려, 소파나 안락의자도 두지 않았다.
그는 "이곳을 작업실로 택했던 건 다름 아닌 계단 폭이 넓어서였다. 큰 캔버스를 옮기기 쉬워서다. 진밭골 바로 아래라, 자연과 가까이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며 "정든 곳이지만, 공간이 부족해서 요즘 더 넓은 새 작업실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원색과 과감한 색채가 특징인 그의 작품은 '놀이(Game)'라는 주제처럼 자유분방하고 단순하다. 피가 끓던 20대 때의 첫 작업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진 작업이다.
그는 "20대에는 현학적이고 심오한, 거대 담론을 작품에 담으려 했는데 어느 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의 본맛을 잊고 머리로만 그림을 그리려했다"며 "다시 진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놀이' 작품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하고싶은 대로 그리고, 너무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붓질을 멈춘다. 그의 작업 과정은 자신에게도, 심지어 작업 도구에게도 자유로움을 허(許)한다.
"캔버스도 저마다의 삶이 있겠죠. 캔버스로서의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집착하지 않고, 어느정도 완성됐다는 느낌이 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내주는거죠."
그에게 그림은 '놀이' 이전에 생활 그 자체다. 의식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됐다. 꼭 정신을 다잡거나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의식하지 않아도, 언제든 자유롭게 꺼내보일 수 있는 행위라는 것.
그래도 잊지말아야 할 것은 '내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작가에게 필수적인 '창의'는 있는 것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내 보이스 컬러, 내 나름의 호흡법으로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것.
"백지 위에 내가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습니다.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창작의 원천인 것 같아요. 작은 창조주가 된 기분이랄까요. 그림에 대한 열망이 꺼지지 않는 한,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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