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그냥 사랑할 뿐

나비야 나비야(강여울/ 수필세계/ 2022)

첫 고객은 노숙자였다. 그는 캔 커피 값을 치르자마자 서둘러 가게 문을 나섰다. 그의 흔적은 지독했다. 오물의 구린내가 절은 허물을 벗어두고 간 게 분명했다. 숨쉬기가 힘들어 가게 밖으로 나갔다. 차고 으스스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동쪽 하늘이 훤해지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를 숙이고 걸어가는 그가 보였다. 그 앞이 점점 밝아졌다. 새날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가벼워 보였다. 어제의 허물을 벗었으니 그는 새롭게 살아가리라. 문득, "그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모든 그늘은 빛에 닿아 있다."를 화두로 삼는 여류수필가가 떠올랐다.

강여울 작가는 수필가이자 시인이다. 평사리토지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대구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어느날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비워야 또 채울 것이므로 과거의 나를 매듭짓는다고.

수필집은 5부로 엮어져 있다. 제1부 '만남과 이별의 간격' 첫 장을 열었다. "만남과 이별의 간격, 그것은 한 몸을 이루고서도 마주볼 수 없는 배와 등 같은 것이다. 나뉘어 있는 앞뒤가 하나의 몸으로 조화를 이루듯 만남과 이별도 함께 있지만 서로를 보지 못하는 한 몸이다. 만남이 설렘인 것은 뒤에 올 이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11쪽) 깨알 같은 글이 잠잠한 마음을 내공해 뒤흔들었다. 사람살이를 조밀하게 그려낸 수필 곳곳에 따뜻한 인간애가 넘쳤다.

함께 산 시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자 손수 목욕을 시켜드리고, 임종 때 손수 염을 하는 내용의 '손'(44쪽)을 읽은 뒤 편향적인 사고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의식이 환기되었다. 나는 내밀한 작가의 빳빳한 정신에 사로잡힌 채 책갈피를 넘겼다.

"나를 꼭꼭 눌러주세요. 자꾸 굴러주세요. 우리 하나가 되어 빙글빙글 지구를 돌려요. 더 크게 굴러서 단단한 내 몸, 우주를 닮은 이 등근 결정, 고마워요. 우주 속에 있던 나를 기억해 내다니!"(185쪽) 사뭇 시적이다. 책 군데군데 시적인 묘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4부 '부드러움에 대하여'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있다. 비와 구두. 냄새와 눈. 자동차를 그, 나, 너, 당신으로 감정을 부여해 인간적인 고뇌와 사회적인 문제를 되짚었다.

그대, 지금 벼랑 끝에 선 기분인가? 견디고 사는 사람 많다네. 상처가 깊다고? 제 상처를 핥으며 사는 사람 많다네. 그래도 정 힘들면 이 책을 권하네. 상처는 터뜨려야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최지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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