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위력 더한 '수도권 블랙홀'

최두성 경북부장
최두성 경북부장

'블랙홀'은 중력의 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빛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파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우주 공간이다. 쉽지 않은 용어지만, 흔히 주변의 것을 죄다 빨아들이는 현상을 빗대 자주 인용된다. 수도권 블랙홀이 주요 사례다.

지난 15일 정부는 국가첨단산업단지(산단) 조성 계획을 발표하며 수도권에 자리한 블랙홀이 더 커지고, 더 센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정부는 이날 전국 15곳에 특화된 산단 조성 계획을 내놨다. 핵심은 누가 봐도 경기도 용인을 대상지로 한 '첨단 시스템 반도체클러스터'였다. 전체 산단 신규 투자 금액 550조 원의 절반 이상인 300조 원이 집중되고 정부가 '세계 최대'로 키우겠다고 했으니, 이견은 없을 듯하다.

삼성이 공장 5개를 짓겠다고 나서 다른 산단 후보지처럼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고민도 없다.

반도체산업의 파급력과 기업 유치 효과 등을 고려할 때 그 혜택이 수도권에 집중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정부는 비수도권에 초점을 둔 반도체 활성화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방의 반발을 생각했는지, 비수도권 14곳을 산단 후보지에 포함시켰다. 삼성도 비수도권에 10년간 6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방에도 콩고물 떨어뜨렸으니, 입을 다물라'는 것처럼.

국내 반도체산업의 부진을 타개하고, 국가 간 첨단산업 경쟁에서 패권을 잡기 위한 '승부수'라는 명분, 밀리면 '나락'이라는 공포감까지 불어넣었으니 토를 다는 자에게 '비애국주의자'라는 프레임 씌우기로도 적당해 보인다.

정치권도 이튿날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추가로 7~9%포인트 높이는 내용의 반도체특별법을 합의 처리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야의 첫 협치 성과물이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클러스터 완성을 위해선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 빗장도 풀겠다는 심산이다. 정부는 지난해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신·증축 지원을 위해 공장 총량제 미집행 물량을 배정하며 경험도 쌓지 않았는가.

삼성은 용인 투자의 고용 유발효과를 160만 명으로 봤다. 정부가 지난해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증설을 추진하겠다고 한 건 '반도체 용인시대'를 열기 위해 짠 시나리오였음이 분명해졌다.

지방 소멸의 으뜸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알짜 기업 부재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매출 1000대 기업의 86.9%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윤석열 정부도 국가균형발전을 중요 국정 과제로 삼긴 했다.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고 대통령이 공언도 했다. 말 따로, 행동 따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올해 신년사에서 수도권 집중 문제를 거론했다. 일본 정부는 곧장 수도권 거주자의 비수도권 이주 시 혜택을 대폭 늘린 정책 시행(자녀 한 명당 기존 30만 엔에서 100만 엔으로 확대)을 알렸다. 적용이 4월부터다.

도쿄 인구 집중 해소, 지방 소멸 방지, 저출산 대책 등 1석3조의 효과를 기대하며 연간 1만 명을 도쿄에서 지방으로 이주시킨다는 목표도 세웠다. 도쿄권 인구는 전체의 3분의 1이다.

한일 정상회담 평가만큼, 같은 문제지를 받아 든 두 정상의 풀이가 달라 보인다.

위력을 더할 수도권 블랙홀이 봄 온기마저 죄다 빨아들여 지방에는 미세먼지만 잔뜩 남길까 두렵다. 벌써 목이 칼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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