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면을 꽉 채운 짙은 구름 가운데 커다란 용 한 마리가 앞발을 치켜들어 발톱을 세웠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다양하게 활용됐다. 무슨 일이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의주를 가졌다고 믿어 지상의 일인자인 왕을 상징하기도 했다. 왕의 신체, 태도, 물건 등에 용안(龍顔), 용자(龍姿), 용포(龍袍) 등으로 용(龍)자를 붙이며 초월적인 지엄한 권위를 왕에게 부여했다.
용은 중국으로 건너와 최고 권력자의 상징이 되었지만 원래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의 호법신 나가(Naga)로 힌두교의 뱀 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용은 우리말로 미르다.
용은 구름을 거느리고 비를 내리게 해 농사를 좌우하는 용신, 용왕의 효능이 있었다. '용 가는데 구름 따르고, 범 가는데 바람 따르듯'이라는 '운종용(雲從龍) 풍종호(風從虎)'라는 말이 있듯이 구름을 거느린 용을 그리는 운룡도의 전통은 오래돼 궁중에서도 민간에서도 그려졌고, 중국의 화보에도 나온다.
운룡도인 '창룡'은 기우제에서 모시는 용신처럼 위세 넘치는 신통력으로 비를 내리는 영험한 용이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둥근 달 아래로 비가 쏟아지고, 여의주는 용의 머리 위에 있다. 윤덕희는 수묵의 번짐 효과를 활용해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는 운룡도의 용을 역동적인 형상으로 그렸다.
왼쪽 끄트머리에 '연옹작(蓮翁作)'으로 서명했다. 연옹 윤덕희는 윤두서의 맏아들로 아버지를 잘 공경했다. 아버지의 화업을 가풍으로 이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일대기인 행장(行狀)을 지어 그림과 관련된 일화를 기록해 놓았고, 남의 집에 소장된 아버지의 그림을 수소문해 다른 그림을 주고 바꾸어 오는 등 애써서 모았다. 윤덕희는 그 중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 22점이 수록된 '가전보회(家傳寶繪)'와 44점을 실은 '윤씨가보(尹氏家寶)'로 꾸며 놓았다.
대대손손 윤씨 집안의 가보로 후손에게 전하려 한 것이지만 그의 노력으로 윤두서의 작품이 한국미술사의 귀중한 자산으로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감동적인 '자화상'을 비롯해 윤두서의 작품을 온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된 데는 윤덕희의 공로가 가장 크다. 윤덕희는 한국미술사의 위대한 공헌자다.
윤덕희의 용 그림은 아버지를 잘 배운 것이다. "윤두서의 말 그림과 용 그림은 거의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말이 남태응의 '청죽화사'에 나온다. 윤두서의 용 그림도 그의 말 그림만큼 유명했다. 윤두서가 방구부채에 그린 '운룡도'가 '가전보회'에 들어있다. 윤두서와 윤덕희 부자는 부채에 운룡을 그렸다. '창룡'은 풍운조화를 부리는 용이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와 잘 어울린 작품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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