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이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호두과자 한 세트를 주문하자 강대균(77·남) 씨는 '반짝기억다방 주문서'라고 적힌 종이에 곧은 글씨로 숫자 1을 적었다. 주문을 확인한 권일순(77·여) 씨는 곧바로 유리컵에 티백 커피를 얹고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붓기 시작했다. 유리컵 밑에는 저울이 놓여 있었다.
20ml씩 세 번을 정확하게 붓기 위해 권 씨는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유리컵 안에 김이 서리면서 커피가 똑똑 떨어졌다. 저울의 눈금이 60을 가리키자 권 씨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종이컵에 커피를 옮겨 담았다. 권 씨가 온전한 커피 한 잔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4분. 벨이 울리자 주문한 다과를 받은 손님들은 "잘 먹을게요"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주문한 음료가 늦게 나와도, 주문했던 메뉴와 달라도 웃음꽃이 피는 카페가 있다. 일일 바리스타가 된 경증치매어르신들이 운영하는 대구 동구 '반짝 기억다방'이다. 22일 오후 2시쯤 찾은 이곳은 기분 좋은 커피 향기가 가득했다.
'반짝 기억다방'은 '반짝거리는 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의 줄임말로 경증치매 진단받은 어르신들의 사회 교류를 늘리고 인지능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캠페인이다. 이날 바리스타로 참여한 권 씨는 "순서가 헷갈리고 주문을 깜빡하는 때도 있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즐겁고 좋다"고 들뜬 마음을 전했다. 주문받던 강 씨도 "평소에 카페를 잘 가지 않는데 직접 손님들도 받고 운영해보니 뿌듯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동구가 처음으로 시작한 '반짝 기억다방'은 일반 카페와 다른 점이 많다. 이곳에서는 메뉴가 잘 못 나와도, 주문이 조금 늦어도 누구도 짜증 내지 않는다. 너그럽게 이해하고 오히려 어르신들을 격려하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1시간가량 진행한 캠페인에 8명의 경증치매어르신이 참여했고, 지역주민 50여 명이 손님으로 가게를 방문했다. 커피와 과자 세트를 주문한 오상인(80‧남) 씨는 "주변에도 치매를 앓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 다방을 와서 커피도 내리고 서빙도 하는 것을 보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구는 지난 2021년 만 65세 이상 인구가 7만1천667명으로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들 가운데 치매 환자 추정 수는 약 10%인 7천148명에 이른다. 동구청은 이번 캠페인을 시작으로 동촌동에만 있던 '치매안심마을' 지정을 신암1동과 안심1동 등 4개 권역으로 늘리고 관련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다.
윤석준 동구청장은 "오늘 행사가 치매 어르신들의 사회 참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란다"며 "치매예방과 관리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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