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헌재의 궤변

정경훈 논설위원

18세기 아일랜드 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였던 조지 버클리는 "물질적 존재는 의식적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질(현실) 세계는 실재하지 않고 감각기관이 전달해 주는 인상의 종합일 뿐이라는 것이다. 궤변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도 돌과 나무는 그 자리에 있다. 귀가 들리지 않아도 새는 지저귄다.

이런 궤변에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제자백가(諸者百家)의 한 유파인 '명가'(名家)의 공손룡(公孫龍)의 흰 말은 말이 아니라는 '백마비마설'(白馬非馬說)도 빠지지 않는다. 그 논리는 이렇다. "백(白)이란 것은 색채를 명명하는 것이다. 색채를 명명하는 것은 형체를 명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

공손룡의 궤변에는 '견백동이설'(堅白同異說)도 있다. "단단한 흰 돌은 눈으로는 흰 것을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른다. 손으로 만지면 단단한 것을 알 수 있어도 하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단단한 돌과 흰 돌은 동일물이 아니다." 이런 헛소리는 거창한 이론이나 복잡한 논증 없이도 단박에 논박할 수 있다. 버클리와 동시대 인물로 수필가이자 사전 편찬자인 새뮤얼 존슨이 버클리와 산책 도중 "외부 세계는 상상의 소산일 뿐이라는 명제를 부정할 방법이 없다"는 버클리의 말에 길 위의 돌멩이 하나를 걷어차며 "자! 이제 부정했소"라고 했다. 공손룡 역시 보기 좋게 논박당했다. 한 농부가 "백마가 말이 아니면 뭐란 말이오?"라고 하자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률이 법안 통과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는 있지만 법률을 가결한 행위는 문제가 없어 법률은 효력이 있다고 결정했다.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궤변과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절차적 정당성'이다. 절차적 정당이 결여되면 결과도 정당하지 않다. 법안 가결 선포 행위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진보' 재판관들은 민주주의의 기본부터 다시 공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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