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펫고등학교 방문해보니…"강아지와 같이 공부, 저도 입학되나요?"

한국펫고등학교 신하늘 학생의 하루

신하늘(18)학생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한국 펫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임소현 기자
신하늘(18)학생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한국 펫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임소현 기자
신하늘(18)학생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한국 펫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임소현 기자
신하늘(18)학생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한국 펫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임소현 기자

3월, 완연한 봄이다. 새싹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노랑, 분홍, 색색깔의 꽃망울이 터진다. 학교에도 아이들이 봄처럼 찾아왔다. 교실은 활기가 넘쳐나고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로 요란하다.

"2교시가 시작돼요. 빨리 교실에 들어가요" 신하늘(18) 학생이 기자를 재촉한다. 교복 대신 검은색 실습복을 입고 손에는 연필 대신 가위를 들고 있다. 하늘이는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한국 펫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국 펫고는 국내 최초 반려동물 전문 특성화 고등학교다.

신하늘 학생이 미용 교사 윤호정 씨의 지도 아래 실습견 엘빈의 털을 다듬고 있다. 임소현 기자
신하늘 학생이 미용 교사 윤호정 씨의 지도 아래 실습견 엘빈의 털을 다듬고 있다. 임소현 기자

◆ 실습실에서 자격증 수업

미용 실습실에 들어서자 2인 1조를 이뤄 테이블 앞에 서있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강아지가 검은색 끈에 묶여 있다. 실습견들이 움직이거나 테이블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끈으로 몸을 고정시켜 놨다. 또다른 학생들도 2명씩 짝을 지어 한 명은 강아지를 잡고 한 명은 실습을 하고 있다. 하늘이는 오늘 비숑 엘빈과 함께 미용 수업에 나섰다. 비숑과 푸들은 미용 실습견으로 많이 쓰이는 견종이다.

1학년은 인조 털로 된 강아지 모형
1학년은 인조 털로 된 강아지 모형 '위그'로 실습을 한다. 임소현 기자
김지민 학생의 미용실습을 받으며 쿨쿨 잠자는 실습견.
"내 털좀 예쁘게 밀어 봐라 멍멍!" 신하늘 학생이 실습견 엘빈의 털을 다듬고 있다. 임소현 기자

"기자님도 오셨는데, 오늘 실수하면 방송 사고다" 미용 교사 윤호정 씨가 하늘이를 향해 한마디 던진다. 그러고 보니 하늘이가 잔뜩 얼어붙었다. 윤 교사는 "지난 수업 시간에 강아지 입 주변 털을 정리하는 미용을 가르쳤었는데 오늘 기자님도 오고 그래서 하늘이가 긴장한 모양이에요"라고 말했다.

하늘이가 긴장하니 실습견 엘빈이도 덩달아 불안한 기색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하늘이가 아니다. 실습견이 움직이지 않도록 손으로 얼굴을 고정시키고 입 주변 털을 능수능란하게 정리한다. 입 주변 털을 정리하는 것은 자칫 동물의 혀가 잘릴 수도 있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신하늘 학생이 교내 동물들이 지내는 사육장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펫고에는 강아지 30마리와 고양이 2마리가 산다. 임소현 기자
김지민 학생의 미용실습을 받으며 쿨쿨 잠자는 실습견. "손길이 부드럽다 멍멍!"

진땀 빼는 하늘이 옆으로 평화로운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띈다. 바로 실습견 나라. 나라는 김지민(18) 학생의 미용을 받으며 쿨쿨 자고 있다. 모델이 꿈쩍 않고 잠을 자니 지민이는 마음껏 미용 실력을 뽐낸다. "강아지 재우는 비법이요? 일학년 때 훈련 개체로 호흡을 맞춘 게 있어서 저를 믿고 따라와 주는 것 같아요".

재우기의 달인 지민이는 이 학교 유일한 제주도민이기도 하다. 지민이가 입학하면서 한국 펫고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찾는 전국 단위 학교로 발돋움했다. 한국 펫고의 재학생은 타시도 학생(84%)이 도내 학생(16%)보다 훨씬 많다.

신하늘 학생이 쉬는시간을 이용해 실습견을 산책시키고 있다.
신하늘 학생이 교내 동물들이 지내는 사육장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펫고에는 강아지 30마리와 고양이 2마리가 산다. 임소현 기자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하늘이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하늘이는 "보통은 아침, 저녁 먹고 산책을 하는데 이 친구는 아메리카 셰퍼드 견종으로 활동량이 많은 친구라 중간중간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 펫고에는 강아지 30마리와 고양이 2마리가 산다.

교실 하나는 아예 동물들의 보금자리로 마련됐다. 학기 초에 교내 강아지를 담당할 사람을 1두당 1명씩 뽑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강아지를 전적으로 케어한다. 실습 수업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녀석들이니 항상 특급 관리를 받고 있다.

한국펫고 곳곳에는 졸업생들과 수상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신하늘 학생이 쉬는시간을 이용해 실습견을 산책시키고 있다.

◆ 취업에 도움되는 교육 최우선

3교시는 직업과 진로 시간. "오늘은 반려동물 창업을 한다면 어떤 쪽을 하고 싶은지 구체화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어요"라며 하늘이는 창업 희망란에 '펫푸드'를 써넣었다. 펫푸드는 강아지를 위한 음식을 제조하는 분야다. 하늘이는 지난 겨울방학 펫푸드 수업을 지원해서 듣기도 했다.

펫푸드에 관심이 있지만 사실 하늘이의 꿈은 반려동물 교사다. 한국 펫고의 역사가 3년 밖에 되지 않다 보니 반려동물 교사로 활동 중인 선배는 아직 없다. "반려동물 교사는 일반 동물 지원학과에 가서 교직이수를 한 뒤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자격증을 보유하면 될 수 있어요. 교직 이수 중인 선배들을 보니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고요" 하늘이는 펫시터 자격증, 핸들러 3급, 미용사 3급, 펫 푸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신하늘 학생은 일반고에서 배우는 보통 교과 수업에도 열심이다. 책과 필기구를 꺼내든 하늘이의 모습은 실습을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펫고 곳곳에는 졸업생들과 수상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선배님들처럼 될래요"
신하늘 학생이 기숙사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신하늘 학생은 일반고에서 배우는 보통 교과 수업에도 열심이다. 책과 필기구를 꺼내든 하늘이의 모습은 실습을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펫고는 취업에 도움되는 교육을 최우선으로 한다. 실제 2022년도 기준 교내 자격증 취득 개수는 412개다. 국내·외 대회에서 다수의 수상 실적도 거뒀다. 졸업생은 애견유치원, 펫샵, 훈련소, 동물병원, 반려동물 시설·기업 등에 취업했다. "저도 선배들처럼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모두 취업과 연관된다고 생각하니 공부도 재미있어요"

일반계고에서 배우는 보통 교과 수업도 있다. 4교시는 과학 시간. 책과 필기구를 꺼내든 하늘이의 모습은 실습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안경까지 끼자 영락없는 여고생의 모습이다. 한국 펫고는 특성화고로 국어·영어·수학 등 보통 교과 수업보다 직업 교육에 초점을 맞춘 전문 교과 위주로 수업이 편성된다.

"공무원반이나 입시준비반도 따로 있어요. 그 친구들은 일반고처럼 보통 교과를 더 심도있게 배우더라고요. 취업을 위한 실무도 중요하지만 학업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신하늘 학생이 훈련장에서 반려동물과 복종훈련을 하고 있다.
신하늘 학생이 기숙사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점심을 다 먹은 하늘이가 기숙사로 기자를 이끈다. "다음 수업은 교정이라고 강아지를 훈련하는 수업인데 훈련복으로 갈아입어야 하거든요" 기숙사로 들어서자 시끌시끌한 교내와는 다르게 적막이 감돈다. "기숙사 조용하죠? 학교 건물 중에 강아지들이 유일하게 못 들어오는 곳이 여기에요. 그래서 저희 학교는 신기하게도 기숙사가 제일 조용해요" 한국펫고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기숙사비는 전액 무료다.

신하늘 학생이 운동장에서 반려동물과 복종훈련을 하고 있다.
신하늘 학생이 훈련장에서 반려동물과 복종훈련을 하고 있다. "손! 손 내밀어 봐!"임소현 기자

신하늘 학생이 펫패션 수업을 듣고있다. 펫패션 수업에서는 실습견들의 치수를 직접 재어 옷과 악세사리를 만든다. 임소현 기자
신하늘 학생이 운동장에서 반려동물과 복종훈련을 하고 있다. "손! 손 내밀어 봐!" 임소현 기자

◆야간자율학습 대신 전문기술 습득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하늘이가 5교시 교정 수업을 듣기 위해 운동장으로 빠르게 뛰어간다. 교정 수업은 잔디가 드넓게 깔린 운동장에서 진행됐다. 햇볕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실습견들은 꼬리를 연신 흔들어 댄다. 교정 수업은 반려동물의 문제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날 수업은 훈련사 3급 자격증을 위한 실습 위주로 진행됐다.

"훈련사 3급 자격증은 정해진 코스가 있어요. 그리고 그 코스를 도는 동안 강아지는 훈련사 옆에 붙어 걸어야 해요. 오늘은 그 코스 중에 앉아, 엎드려, 서, 손 악수를 가르치기로 했어요. 강아지와 교감하고 하나하나씩 강아지가 따라올 때마다 너무 기뻐요" 하늘이 옆으로 반려동물 조이가 따라 걷는다.

그리고 하늘이가 멈추자 조이도 멈춘다. 교정 교사 이수영 씨는 "강아지와 학생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복종 훈련이 잘 진행될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신하늘 학생이 펫패션 수업에서 자신이 만든 옷을 보여주고 있다. 임소현 기자
신하늘 학생이 펫패션 수업을 듣고있다. 펫패션 수업에서는 실습견들의 치수를 직접 재어 옷과 악세사리를 만든다. 임소현 기자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활동이 시작된다. 한국 펫고는 일반 고교의 야간자율학습 시간인 오후 7~9시에 전문 기술을 배우는 방과 후 학습을 한다. 방과 후 활동은 학생 스스로 부족하거나 더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서 듣는다. 하늘이는 여러 과목 중 펫패션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펫패션 교실로 들어가니 쉬는 시간인데도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김예서(18) 학생이다. 그리고 예서 옆으로 강아지 옷과 리드줄이 수북이 쌓였다. "3월 23일이 강아지의 날이거든요. 저희 교내에 있는 강아지들한테 선물할 옷이랑 리드줄을 만들고 있어요"라며 예서는 이 힘든 일을 무려 자원해서 한다. "펫패션 쪽으로 일하고 싶어서 관심이 많은데요. 크고 작은 서른 마리의 다양한 강아지의 신체를 직접 재 보는 기회를 얻는 거잖아요. 그래서 얼른 지원했어요"라고 말한다.

신하늘 학생이 펫패션 수업에서 자신이 만든 옷을 보여주고 있다. 임소현 기자

방과후 수업이 모두 끝나자 어느새 해가 지고 밖은 깜깜해졌다. "오늘은 교내에서만 수업이 진행됐는데, 어떤 날은 동물병원으로 실습을 가기도 하고, 외부에서 강의를 오시는 전문가분들과의 수업이 있기도 해요. 저희 참 바쁘게 살죠? 하지만 이 모든게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니 힘들지 않아요"

반려동물 교사가 되면 꼭 연락하겠다며 하늘이가 활짝 웃는다. 그때 문득 기자의 고교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제대로 된 꿈이 있었던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기는 했는데 말이다. 밤 열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걸어가던 그 때의 표정을 떠올려본다. 아무래도 하늘이처럼 밝지는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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