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노가리, 쥐박이, 명박 급사, 귀태(鬼胎·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 정치적 창녀, 진상 규명에도 나서지 않는 대통령, 당신은 국가의 원수….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막말들이다. 시정잡배라도 마음 편하게 내뱉기 어려운 언어이다. 법이든 정치이든 말에 의하여 움직인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정치 언어는 그 정치 수준을 반영한다. 위와 같은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는 등급 외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편 정치 언어는 그 시대의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 다반사로 사용되는 막말과 '윤핵관' '사법 사냥'류의 정치 언어에서 정치와 국가가 추구하여야 할 통합과 미래지향적 가치 등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품격을 잃은 우리 정치가 국가 시스템의 개혁과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정쟁에 치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난해 12월 15일에 발표된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81%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결과 국회는 조사 대상 국가기관 중 신뢰도 꼴찌를 기록했다. 국회 불신의 원인은 대부분 국회의원들의 부패와 막말에 있다. 막말 정치가 과격해지는 배경으로 '정치의 양극화'와 'SNS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지지층을 의식하여 더욱더 자극적인 표현을 하게 된다. 자극적인 언어를 SNS를 통하여 유포함으로써 상대를 악마화하고 팬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갈등의 조정·해소자 역할을 해야 할 정치가 거꾸로 '갈등의 조장자'가 되고 있다. 정치인이 말 기술로 대중을 오도하는 권력 사냥꾼으로 전락하고 있다. 언어를 무기로 하는 정치판에 최근 새로운 유형의 정치 언어가 커밍아웃을 하였다. 바로 진실을 가장한 견강부회의 거짓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은 이런 거짓말을 정치 업계에서 통용되는 '잔기술'이라고 했다. 이런 잔기술의 폐해는 막말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는 일주일 전 이재명 대표에 대한 기소를 정치 탄압으로 보아 대표의 당직 유지를 만장일치로 의결하였고, 반대 의견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전해철 의원이 당헌상 기소가 되면 자동적으로 당직이 정지되는지 여부를 정치 탄압에 앞서 논의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당무위원회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당직 유지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사 표시임이 분명하다. 김 대변인은 거짓 브리핑 논란에 대하여 '나를 자꾸 거짓말쟁이로 몰아간다'며, 전 의원이 소집 절차를 문제 삼아 기권하고 퇴장했으니 '반대 없이 통과됐다'라는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정도의 '잔기술'은 이쪽 업계에서는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대변인의 이 말은 궤변론자로 변한 고대 그리스의 일부 소피스트들을 떠올리게 했다. 말의 힘과 '말하는 기술'에 처음 눈뜬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다. 말하는 기술, 즉 수사학은 원래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한 전략에서 나왔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용병과 이주민들에게 토지를 빼앗긴 시칠리아 원주민들이 민주적 정치체제가 들어서자 토지 소유권을 되찾는 소송을 시작하였다. 당시 재판은 법률 전문가가 아닌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맡았다. 당사자들은 일반인 출신 재판관에게 직접 변론을 하였다. 재판관이 법적 전문 지식이 없었기에 화술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소피스트로 불린 자들은 '말하는 기술'을 가르치며 밥벌이를 했다. 많은 소피스트가 논쟁에서 이기는 데 치중한 나머지 궤변론자가 되어 갔다. '강자의 이익이 정의다'고 한 트라시마코스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서양의 주류 철학은 소피스트를 말 기술로 대중을 오도하는 지식 장사꾼으로 폄하한다.
1985년 26세의 유시민은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후 구치소에서 명문의 항소이유서를 작성하였다. 필자를 비롯한 그 무렵 판사들이 찾아 읽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항소이유서가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선전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고 정의했다. 그런 그가 정치권을 거치고 나서, 정경심 전 교수의 증거인멸 행위를 '증거보전'이라고 강변하고, 김정은을 '계몽 군주'라고 미화하는 궤변론자가 되었다. 무엇이 진실의 세례를 청원하던 맑은 영혼의 청년을 이처럼 변질시켰는가. 우리 정치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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