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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쌀의 구원투수 가루쌀

최경철 논설위원
최경철 논설위원

북한에서는 아직도 '쌀밥에 고깃국'이란 말이 여전히 풍요의 상징이라는데 우리는 쌀이 애물단지 신세가 된 지 오래다. 통계청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으로 30년 전인 1992년 소비량(112.9㎏)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지난해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3㎏가량으로 쌀 소비량의 절반을 넘어섰다.

생산되는 쌀은 많고 소비가 되지 않으면서 가격이 내려가자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개정안까지 발의돼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쌀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 시장에서 격리시키는 방법으로 쌀 재배농의 소득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이 법안의 골자다. 비용만 많이 들고 실효성은 없다는 전문가들의 한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이 실제로 시행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추락해 버린 쌀의 위상만큼은 명확하게 알려 준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창고로 직행하는 쌀의 양이 더 늘어날 터인데 지금도 엄청난 양의 쌀이 이미 전국의 농협 창고 등에 쌓여 있다. 개정된 법이 실제 적용될 경우, 쌀을 보관하는 데만 추가로 매년 1조 원 넘게 들어갈 것이라는 국회 농해수위원회의 예측(최춘식 국민의힘 의원)도 나와 있다.

쌀이 남으면 정부가 사들여 창고에 쌓아 놓으면 된다는 인기영합형 법안도 있지만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쌀 소비를 늘리는 방법으로 위기 타개를 해 보자는 정공법도 있다. 밀가루처럼 쌀도 제분, 가루쌀을 만들어 다양한 가공식품 원료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빻은 뒤 가루로 만들 수 있어 밀가루 대체에 적합하다. 가루쌀 품종을 재배하면 밥상용 쌀 재배 면적도 줄일 수 있다.

국내 대표 식품 기업들도 가루쌀 제품 개발에 나섰다. 해태제과는 가루쌀 오예스를 만들겠다고 하고, 농심·삼양식품·하림산업은 라면에 가루쌀을 넣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도 가루쌀로 식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쌀은 수분 흡수성이 좋아 밀가루 빵에 비해 촉촉한 식감이 더 뛰어나다는 제빵 전문가들의 설명도 있다. 쌀이 창고 신세로 전락하는 비극을 막고, 제2의 쌀 전성시대를 열어젖힐 구원투수 역할을 가루쌀이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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