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달성군 공공임대주택에도 봄이 올까요

윤수진 기자
윤수진 기자

지난 20일 대구 달성군 한 공공임대주택의 커뮤니티센터는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령 도시처럼 적막했던 아파트에 활기가 돈 이유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곳을 직접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5년 분양 전환 공공임대주택에서 대규모 분양 전환 사기가 벌어지면서 이곳 입주민들의 피해 상황은 심각하다.

입주민들은 "원 건설사가 공적 자금인 주택도시기금을 빌려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면, 부실 건설사가 매입해 온갖 불법 행위를 통해 수익을 낸다"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달성군 유가읍 공공임대주택의 임차인 보증금 822억 원이 증발했고, 현풍읍의 또 다른 공공임대주택 226가구는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날 원 장관은 입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어려움을 직접 청취하기 위해 방문했다. 간담회에는 국토부, 주택도시보증공사 실무자들도 참석했다. 피해 입주민들은 이들을 향해 '사기꾼을 구속하라'는 팻말을 흔들었다.

원 장관은 간담회 자리에서 입주민들에게 건설사 처벌과 피해 상황 회복을 약속했다. 입주민 대표들이 건설사 임원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자, 유사한 사안에서 기소된 사례를 수집했고, 정부 차원에서 경·검과 협의해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국토부가 나서 법원, 금융 당국과 협조해 피해 상황을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원 장관의 파격적 발언에도 입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미적지근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만난 유가읍 공공임대주택 입주민은 "장관이 직접 와서 이야기를 들었으니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면서도 "정치인이 와도 실제로 진전되는 것은 없더라"며 기대 반 의심 반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입주민들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2020년 11월, 유가읍 공공임대주택이 한창 보증 사고로 시끄러웠을 무렵 국토부에서는 달성군과 TF를 구성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때도 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함께 임차인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 법령 위반 행위와 고소, 고발 진행 상황도 살피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논의하고, 검토하고, 살피기만 하는 동안 건설사는 유가읍에 이어 현풍읍에서도 보증 사고를 냈다. 2020년 4월 유가읍 공공임대주택 보증 사고가 나기 직전, 건설사 임원은 또 다른 법인을 이용해 현풍읍 공공임대주택을 사들였다. 이후 무더기 분양 부적격을 내는 등 같은 수법으로 탈법을 일삼다가, 2022년 10월부터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졌다. 현재 현풍읍 입주민들은 건설사의 빚 수천만 원을 떠안지 않으면 소유권 이전을 받을 수 없다.

민간건설주택도 아닌 공공임대주택에서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범죄가 반복되면서 '공공'을 향한 신뢰는 점차 추락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입주민은 "지금도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정작 이미 지어 놓은 공공임대주택 관리는 엉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관리 부재로 스산해진 공공임대주택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국토부는 정부와 공공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때다. 이번 장관 방문을 기점으로, 정부 차원에서 불법 건설사를 처벌하고 입주민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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