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최진아 연출의 <하얀 봄> 시대의 모호한 소환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백골단이 학교로 돌아오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우리는 최루가스 쏘고 파이프 들고 달려들면 그냥 흩어지는 거야 민주화를 외치며 그사이에 3명이 더 분신을 했어 여대생 한 명은 독재정권의 폭력 진압으로 사망까지 했고" 최진아 작, 연출 <하얀 봄>(극단 놀땅, 기획 코르코르디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의 봄날은 91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신정권은 10,26사태로 막을 내렸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비켜 갈 수 없는 주역(主役)들은 5공화국 군부 시대를 유지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진' 박종철 고문 사건으로 촉발된 1987 한국 사회 아스팔트의 봄은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다. 6공화국 '보통 사람'시대도 그렇게 열렸다. 보통 사람들 시대의 여소야대 민주정의당은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으로 몸집을 키웠고 '문민정부' 시대를 열게 했다. 그사이(1990~1993) 저항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난 알아요' 서태지 세대는 한국 사회 문화혁명의 바람을 주도하며 시대의 폭력과 최루탄으로 지워낼 수 없는 대학가 아스팔트 핏물의 흔적은 90년대 문화의 시대로 지워져 갔다.

◆90년대 <하얀 봄>의 시대

연극 <하얀 봄>은 운동권 마지막 세대들의 이야기이면서도 90년대 봄은'폭력과 사랑, 낭만'으로 물들어 있다. 폭력의 저항, 청춘들의 시시콜콜한 사랑 이야기는 극 중 인물 수연(김정 분)과 정운(이세영 분)을 중심으로 동성애 우정(사랑)까지 시간의 기억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봄은 '민주화의 봄'이면서도 최진아 연출의 '하얀 봄'은 90년대 정치적 전환기의 안개 속에서 길을 배회하며 잊을 수 없는 캠퍼스의 사랑과 폭력의 마지막 시대를 소환하며 노태우 보통사람들의 91년도 봄날에서 현재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해 학생운동이 퇴조하고 서태지로 상징되는 대중문화 전성시대 497세대의 한국 사회는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이어지면서 독재 및 민주화 투쟁의 열기는 식어가고 있었다. 백골단과 사복경찰의 쇠 파이프 폭력으로 숨을 거둔 학생 사건에 의해 대학가는 등록금 인상 반대를 하던 '학원 자주화 운동'으로 정원식 총리서리의 밀가루와 계란 투척 사건과 백골단과 사복경찰의 쇠 파이프 폭력으로 숨을 거둔 장경대 사건이 일어나면서 화염의 분신 정국으로 점화되었다.

시민들은 밀가루와 날계란을 던지며 스승을 폭력으로 대하는 과격 학생운동에 80년대 봄날처럼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학생운동의 시선은 싸늘해져 갔다. 그렇게 91년도 6월은 저항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전환되며 최루탄도, 닭장차도, 백골단과 사복경찰도 대학가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총학생회도 학생들의 복지와 '문화운동'에 주력했다. 최진아는 <하얀 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90년대 동아리 활동의 추억소환과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들의 뜨거움, 백골단과 장경대 사건, 장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 사건과 시대의 폭력,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청춘의 사랑과 말할 수 없었던 동성애의 사랑, 국가폭력에서 인간의 폭력으로 돌아온 이 시대 위계폭력의 문제를 건드리며 극중인물 병호의 대사처럼 " 우리 청년들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는 자유세상,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 가슴 따뜻한 평등 세상을 꿈꿉니다.(중략) 진정한 자주의 삶을 위해 권력에 맞서고 관습과 싸우며 폭력에, 독재에 저항할 것입니다"를 연결해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최진아의 <하얀 봄>은 최루탄과 밀가루에 가려진 시대처럼 뜨겁지도, 사랑의 열기도, 과격한 폭력의 시대를 돌아온 위계의 폭력도, 90년대 문화의 뜨거움도 서사의 한 방향을 정확하게 무대로 과녁 시키지 못했다. 90년대를 기억하는 정치적인 시대의 역사적인 현상만이 수연과 정운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로 장면이 나열되었고 청춘들의 사랑과 폭력은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시대는 모호해졌다. 하얀 봄의 서사를 최진아의 방식으로 무대의 전경화를 기대하면서도 기억을 소환하는 시대의 절규도, 아픔도, 뜨거운 사랑의 전율을 무대로 그려내거나 형성하지 못했다. 무대 공간의 활용은 철재 계단의 베란다와 농촌풍경,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공간은 평면적이었다.

고인돌로 돌아간 두 사람(수연, 정운)이 같은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90년대 동성애 사랑의 감각으로 회복되는 장면에서도 공감의 전류가 충분하게 흐르지 않았다. 그만큼 최진아 연출은 작가로 그려낸 90년대 이야기를 연출의 무대로 배치하면서 폭력적인 사건의 시간만 타격했다. 90년대의 주인공들은 교수(수연)로, 국회의원으로 한국 사회의 기득권으로 살아가고 수연이 정운을 향해 말하는 "논과 산 다 깎아 먹고 거대자본만 살찌운다며 골프장 매국 자본 투쟁 투쟁! 결사투쟁"를 외쳤던 그 날의 시간은 현재 삶의 시간으로 채워져 가는 인물로도 보이질 않았다. '살인정권타도! 학원자주화'의 외침은 시간을 돌아 수연은 제자 아름(박세은 분) 한테 강압적인 위계폭력으로 고발당하고 나래의 '동물해방선언'은 대사처럼 "일상이 된 폭력을 막으려는 거예요. 동물과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금 음식에는 폭력이 숨어있거든요" 폭력의 저항에 막차를 탄 90년대 세대들은 30년 시차를 돌아온 세대의 시대에 외침은 모순되고 부조리한 일상의 사회제도와 참사, 정치 현상과 폭력에 당당한 댓글로, 소셜미디어로, 유튜브로 발언하는 현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90년대 한국 사회 미래를 위해 저항한 시간 들은 내일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부여하는 MZ세대들의 시대이다. 시대의 폭력으로부터 집단적 공동체와 동지체제로 맞서 싸웠던 90년대 학번 시선으로는 그들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수연도 변화된 세대 방식에 갈등을 보인다.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최진아의 봄. 모호한 시대의 소환

무대는 현재와 과거(1991)가 교차하는 공간으로 이동식으로 된 철제계단으로 올라서면 작은 베란다 공간이 설정되어 있다. 마치 90년대 대학가의 밀실 동아리방의 한 모퉁이처럼 나와 있고 그 좌측 뒤편으로는 뿌리 밑동이 보이는 소나무 한 그루가 땅으로 박히지 못하고 올려져 있고 우측으로는 고인돌이 무대 상단에 걸쳐 있다. 무대 공간은 90년대를 재현하고 정운과 수연이 현재로 이동되는 극 중의 공간들로 변주된다. 나무는 학원자주화운동과 장경대 사건, 분신 정국의 폭력에 맞서 싸웠던 시대다. 한국 사회로 이식되지 못한 채 생명이 잘려 나간 것처럼 서 있고, 수천 년 선사시대의 토양을 버티며 한국 사회 땅으로 밝혀진 고인돌은 90년대 국가폭력으로 사라져간 죽음들을 환기할 수 있는 죽음의 무덤이면서도 천제단(天祭壇)으로 사용된 무덤은 정운과 수연의 동성애적인 사랑의 감각이 회복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치 고인돌의 신령(神靈)이 이들의 운명적인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수적인 한국 사회 땅으로 견고하게 박힐 수 없는 퀴어와 젠더 현상은 비로소 원피스를 입은 수연과 정운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30년을 지나 비로소 퀴어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국 사회의 토양으로 고인돌은 내려앉게 된다.

무대는 현재 시간에서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정운과 수연의 두 사람 장면을 교차시키고 연출은 극 중 인물 대사를 기억이 과거로부터 존재하는 것처럼 탈 일상화시킨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대학 시절 정운(이세영 분)의 기억은 청춘들의 시시콜콜한 사랑 방식들을 꺼낸다. 처음 키스했던 얘기와 섹스 경험을 쏟아내고 수연이가 옷 속으로 밀어 넣는 정운의 손은 남자친구 찬규 손보다도 따뜻한 체온이 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고인돌)은 그 시대에 숨길 수밖에 없었던 동성애 사랑의 감각을 고백했던 장소이다. 무대의 극 중 장면은 배우들에 의해 대, 소도구나 소품, 의상의 변화로 평면적으로 그려지는데 대공연장 공간을 채우는 극 장면의 열기는 시대의 뜨거움 만큼, 무대 형상화의 연료가 부족하고 시위 도중 쇠 파이프에 맞아 숨진 강경대 사건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시대부터는 전경(이서한 분)이 학생들에 의해 둘러싸여 백골단과 최루탄, 구타와 폭력, 화염병 등을 쏟아내며 분신 정국과 밀가루 투척사건, 총학생회장의 구속 시간으로 이어지며 91년도 '하얀 봄' 시간을 소환한다.

연출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일정하게 배치하지 않는데, 정운과 수연의 현재 시간 사이에 과거 기억을 밀어 넣고 장면을 현재-과거-현재로 연결하며 시간의 기억을 되돌림 하는 방식이다. 장면의 연결은 현재 두 사람의 대화에 있다가도 특정한 대사나 기억으로 정지화면이 재생 버튼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배우들은 뛰고 달리며 시간의 장면으로 되돌리는 식이다. 90년대 들국화 '행진'이 반복적으로 흐르고 깡 소수로 버티면서도 전경이 좋아하는 메탈리카 음악은 사상교육을 받아야 하는 미제 파쇼 음악이 되면서 반미주의 이념을 드러낸 대학가 운동권들의 90년대는 미국문화를 조롱하고 전경은 도망치면서도 이들을 향해 '빨갱이 새끼들'로 부른다. 80년대를 지나 보통사람 시대에도 국가는 반공 프레임으로 대학가를 닭장차로 무장한 채 사복 체포조는 캠퍼스를 누비고 백골단의 폭력과 최루탄의 화염을 막아서면서도 청춘의 사랑은 뜨겁다.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최진아 연출(작가)은 사랑 방식도 그 시대에서 해결될 수 없었던 정운과 수연의 동성애 감각과 관계를 연결하려 했던걸까. 이성(異性)을 육체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진정한 사랑의 욕망은 허기진 채로 동성의 감각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그 시대의 불규칙적이고 무책임한 청춘들의 날것의 사랑 방식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7장 '불안'의 장면에서 찬규의 아이를 임신한 것 같은 이야기들이 다뤄진다. 정운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털어놓고 수입 개방 결사 저지를 외치며 달려간 농촌의 들판에서 임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석훈(남수현 분)은 사랑을 고백하고 정은도 받아들인다. 이어지는 미술관 장면에서는 수연과 용우과 재회하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독재 공안정국 타도와 민주와 국가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용우는 시대의 가슴이 제거된 채로 마치 90년대의 감성팔이를 하는 정치인들처럼 보인다. "지금이 더 좋은데요. 적어도 군사독재는 끝났잖아요" 하며 키스를 하려는 용우의 뺨을 때리는 수연은 "그때 연애라도 잘했으면 지금보다는 잘 살았을 거 같아요.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이 세상이 나를 받아주는 누군가를 나를 따뜻하게 맞이줄 거라고 착각하지는 말아주세요"라고 말한다. 대학 시절 뜨거웠던 동지들과 학생운동 선배들을 향한 이성의 사랑은 수연과 정운 두 사람 모두 온전하지 못한 채 과거 자국으로 남아있으며 재회를 통해 비로소 사랑의 감각이 회복된다. 무대는 총학생회장(병태)의 검거와 장원식 총리서리의 밀가루, 계란 투척 사건들이 극 중 인물 대화를 통해 스승을 구타한 패륜 학생들의 이야기가 학원탄압의 빌미가 된 당시 시대 상황들이 들쳐지면서도 "어른이 돼서라도 우리는 지금 어른들처럼 죄짓지 말자 너무 낡았어"라는 수연의 90년대의 다짐은 30년의 세월을 돌아 제자한테 위계폭력으로 고소를 당하게 되고 분신 정국의 시간을 돌아 단체 기합을 받던 기억을 소환하고 마지막 장면은 수연과 정운이 원피스를 입고 고인돌 제단으로 향하면서 끝난다. 마치 90년대에 느꼈던 두 사람의 감각이 온전한 사랑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정운과 수연의 91년도의 봄은 뜨거우면서도 폭력적인 강렬함이 없었고 대자보를 붙이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시대 폭력에 저항하면서도'혁명', '동지'의 반복적인 대사들은 90년대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 사이 시간에 놓여 있는 수연과 정은의 동성애적인 사랑의 공감도 진도가 나가다 만 느낌이었고, 제자의 위계폭력의 고발은 세대 현실을 타격해내는 설득의 연료가 부족했다. 90년대 마지막 운동권 폭력의 시대를 돌아 오늘날의 위계폭력, 퀴어의 사회적 담론과 청춘들의 사랑, 90년대 문화까지 쏟아내면서 최진아 연출의 <하얀 봄>은 모호한 시대의 소환이 되었다. 연극을 관객의 감각으로 보고 채워가는 방식에서 읽는 방식으로 이해가 된다면 그것은 연극적인 뜨거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최진아는 작가와 연출로도 <하얀 봄>을 뜨겁게 사랑한 것 같다. 무대는 채워지지 않았고 하얀 봄의 길은 시대의 현상과 대화만 있고 절규의 사건은 무대로 쌓이지 못한 채 가슴을 향하지 못했다. 정운과 수연의 이야기만으로 넘치고, 90년대 청춘들의 사랑과 폭력의 시대만도 풍족하다. 위계폭력은 작품 구성과 의미 부여의 언어로는 효과적이지만 이야기가 섞이면서 전체 서사를 끌고 나가는 데는 타격감은 약했다. 덜어내고, 정운과 수연의 한 가지만 들고 90년대 폭력의 시간을 재료로만 뒷받침됐더라면 어땠을까. 이야기는 과하고 연출도 넘친다. 희곡이 향하는 시대의 멜로디가 아름다워도 그 리듬의 언어가 무대의 형상화로 채워지지 못한다면 시대는 겉돌고, 삶의 의미도 하얀 봄처럼 선명한 계절이 될 수 없다. 김정, 이세영, 이준영, 남수현, 송치훈, 김관식, 최강현, 박다미, 이서한, 최수현, 박세은의 극단 놀땅 배우들은 90년대 풍경을 채우면서 기억의 파편들을 그려냈다.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극단 놀땅 하얀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경오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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