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흰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싱싱한 원색의 향연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명랑한 채색의 친근하고 해학적인 박생광의 '용'은 궁궐의 용이 아닌 불전과 부처를 수호하는 사찰의 용, 서민의 용이다. 왕조시대에 궁궐에서 호강을 누리던 용은 왕과 왕실이 없어진 지금은 사찰이 주 거주지다.
부처의 탄생 설화에서부터 용이 나온다.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아기부처를 씻어줬다는 구룡토수(九龍吐水)다. 다양한 상징이 있는 상상의 동물인 용은 절에 가면 그림으로 조각으로 많이 볼 수 있다.
노란 비늘의 황룡이 붉은 여의주를 앞에 두고 파란 구름을 둘렀다. 수염과 뿔, 어금니와 발톱의 흰색이 영기를 뿜어내고, 갈기는 초록색, 콧수염은 파랑색이다.
19세기에도 20세기에도 주류가 아니었던 채색화로 자신의 양식을 완성한 박생광 색채의 원천은 사찰의 단청이다. "사찰의 단청을 보기 위해 전국의 큰 절을 거의 다 돌아봤다"라고 한 깊은 매혹은 박생광 회화의 진하고 선명한 색채로 결실되었다. 단청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단청안료를 직접 자신의 그림에 사용했다.
작고한 해인 1985년 봄 소설가 강석경과 한 대담에서 "단청은 77년 첫 전시회 뒤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전부터 좋아했어요. 생리적으로 좋았어요. 일반 채색은 옅어서 재미없어요"라며 진채(眞彩)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절집 단청을 좋아한 데는 소년시절 친구와 입산을 약속할 만큼 불교에 심취했던 인연도 있다. 그 동네 친구는 불교계의 거인이 된 청담스님이다.
채색화는 조선시대부터 예술적 감상의 영역보다 궁궐과 관청의 의례와 장식, 종교적 장엄과 예배, 민간의 치장 등에 주로 활용되었다. 박생광은 궁중의 장식화, 사찰의 불화, 민화와 무속화 등 채색화의 전통과 건축의 한 부분으로 이어져 온 단청에 매력을 느꼈다. 사찰은 옛 진채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채색화는 숙련된 솜씨를 가진 전문화가인 도화서 화원, 불모(佛母) 또는 금어(金魚)라고 했던 승려화가인 불화사(佛畵師), 지물포에서 유통되거나 장터에서 팔린 싸구려 그림을 그린 화가 등 기량의 우열과 승속(僧俗)이 섞인 다양한 창작자들에 의해 그려졌다.
이런 채색화는 솜씨의 높낮이를 떠나 화가의 개성적 창조력을 우선적 가치로 하는 감상화와 성격이 다르다. 감상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변화되며 부지불식간에 전승된 미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채색화는 공동체의 집단적 감수성과 미의식이 다수의 미술 종사자들에 의해 누적되며 쌓여온 결과물이다. 박생광이 '용'에서 활용한 것은 전국의 절집을 다니며 흡수한 이런 역사성을 가진 미술이고 색채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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