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기자에겐 책은 도피처였다. 쉬이 납득이 안되는 일을 받아들여만 할 때 책을 폈다. 때론 책 속 한 구절이 위안이 되기도 했고 해결책이 되기도 했으며 결심이 됐다. 아마 구원을 받고자 했던 것 같다.
그 구원을 이 소설집에서 단번에 찾기는 어렵다. 일상에 균열이 생겼을 때 만들어지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김이설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통해 쉽게 구원이 안 되는 이유는 단 하나.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의 중심축인 바로 가족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결속된다. 우리가 최초로 인연을 맺는 관계의 시작점인 만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이다. 그런 가족의 품이 지옥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이라는 불안한 인연을 쉽게 끊을 수도 떠날 수도 없다.
총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인데 성격도 나이도 다른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가족과 갈등과 이별을 겪는다. 어디 그뿐이랴, 가족의 외도와 성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형부의 외도로 무너져가는 친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유년시설 이모와 아버지의 부적절한 관계를 떠올리기도 하고 고모네 집에서 얹혀 살며 고모의 아들에게 지속적인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다. 태어나보니 가족이 된 집단에 생긴 균열은 자의에 의해 얻어진 것도 아니면서 주인공들을 옥죈다.
작가는 이처럼 불편한 이야기를 자꾸만 소재로 삼는다. 그러면서 지옥에서 헤매는 이들을 감싸안기는 커녕 더욱 현실로 내몰아 악착같이 살아가도록 이끈다. 즉,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불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열 가지의 의지를 담은 소설집인 셈이다. 어지러운 현실에서 온전히 살아남으려는 다짐들이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희망이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결심이 필요하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하더라도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버텨야 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열 명의 주인공들도 또한 그렇다. 대신 단번에 구원받을 방향을 찾진 않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더라도 희망을 찾기 위해 한발자국씩 내딛는다. 아픈 엄마로 그림 그리는 꿈을 포기하던 주인공이 다시 그림을 시작하려 꽤 많은 고민을 거쳐 미술 도구를 구매하거나, 가업을 물려 받아 아픈 동생을 돌보며 사는 주인공이 결혼까지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살길이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선택지를 떠올리는 모습들이다.
"오전 내내 비가 오고 오후에 바짝 갠 하늘을 보여주더니, 해질녘이 되자 수평선 부근부터 붉은색으로 변해가"
열 가지의 서사에 담긴 다짐들은 결국 독자의 삶에도 새로운 결심의 계기를 건넨다. 비가 온 하늘이 갠 것처럼 삶의 풍경도 자꾸만 변한다는 것.
'소설들마다 사연과 그 맥락이 다양하지만 모두 어떤 갈림길에 서 있거나 이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들의 녹록지 않은 상황과 그 속에서의 안간힘이야말로 '삶'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 대한 김미정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 일분데 김이설 작가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새로운 결심은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하는 안간힘 즉, 잘 버텨내고 있는 '삶' 그자체일 것이다.
울지 않는 밤을 관통하는 한 문장.
"그래도 나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기로 했다" 39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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