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나라가 정상화되고 있다

이대현 논설실장
이대현 논설실장

애송시 중 하나가 김춘수의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자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존중의 시작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와 나의 의미 있는 만남이 이뤄진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행위다.

2015년 6월 25일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주관으로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열린 행사에서 6·25전쟁의 미군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전사자 3만6천574명을 호명하는 데 사흘이나 걸렸다. 이후 해마다 미8군 한국군지원단(카투사) 전사자 7천52명, 유엔군 전사자 3천300명, 실종자 7천704명의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불러 줬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지난주 열린 제8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도 이름을 부르는 행사가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 등에서 북한 도발에 맞서 서해를 지키다 산화한 55용사의 이름을 불렀다.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55용사의 이름을 5분여간 일일이 호명했다. 서해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북한의 도발'이라고 못 박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이 있을 경우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기념식에 불참하거나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북한 도발을 명시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

윤 대통령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름을 부른 서해 55용사는 이 나라의 영원한 꽃이 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진 영웅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55용사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대통령을 보면서 나라가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필자만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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