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응급실 뺑뺑이에 속탄다"…경증환자 막을 수 있는 문턱 높여야

응급의료 시스템 변화 목소리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경증환자들…정작 중한 환자는 때놓쳐
"1차-3차 병원 징검다리·허리 역할 2차 병원 역할 키워야"
日 환자 걸어서 못 들어가…美 비용 수천만원 될 수도
우리는 아주 자유로운 현실…"돈 더 내세요" 시스템 필요

지난 19일 4층 건물에서 추락해 구급차에 실린 10대 학생이 치료 가능한 병원 응급실을 찾지 못해 결국 숨진 사건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늘 사람들로 미어터지면서, 정작 중한 환자를 놓치게 되는 구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환자 중증도에 따라 명확한 분산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상급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경증환자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에 속 타들어가

경산에 사는 A(45) 씨는 지난해 호흡 곤란으로 힘들어하는 80대 아버지를 119에 실어 병원에 보내면서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코로나19에 확진된 후 8일째 되는 날부터 심각한 폐렴 증세가 생겼다.

119에 출동을 요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대가 도착해 한시름 놓는가 싶었지만, 도리어 그때부터 생지옥이 펼쳐졌다.

A씨는 "구급대원들이 인근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당장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아 계속 전화를 돌렸지만 다들 병상 여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1시간 동안 병원을 찾느라 구급차가 집 앞에서 출발도 하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었다"고 떠올렸다.

출동 후 1시간이 지나서야 25km 정도 떨어진 한 종합병원과 연락이 닿았고, 30분을 달려 도착했지만 이렇다 할 치료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A씨는 "기관 내 삽관이 필요했는데 그 병원에서는 당장 해줄 수 없으며, 환자 상태를 봤을 때 당직 체제가 끝나더라도 대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당시 의사가 그곳에서 1시간가량 수용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준 끝에 대구의 한 대학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아버지의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도착한 시점은 집에서 나온 지 3시간 30분이나 지난 뒤였다"고 몸서리쳤다.

◆북새통 이루는 응급실

의료계에서는 경증환자에서부터 중증환자까지 모두 상급병원 응급실로 몰리도록 내버려 둔 현 응급의료 시스템이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응급실은 전 세계적으로 이용이 아주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현재 응급실 진료를 받기 위해선 비응급 환자로 인한 응급실 혼잡을 막고자 접수비와 별도로 '응급의료 관리료'를 내야 한다"며 "의료기관 종별에 따라 응급의료관리료가 다른데, 대학병원은 6만9천원 정도다. 경증 환자는 다 본인 부담이긴 하지만 환자 쏠림을 막을 정도로 비싼 금액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료진과 구급대 입장에서는 비응급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하겠다고 고집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말 위중한 환자만 가도록 되어 있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응급실 문턱이 낮은 우리 응급의료 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역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본의 대학병원 응급실은 우리처럼 북새통이 아니다. 조용하고 환자가 걸어서는 못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응급실 병상이 우리나라처럼 많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응급실에서는 경증 환자가 진료를 받으려면 환자는 먼저 간호사 앞에서 증상을 설명해야 한다. 환자가 의사를 꼭 만나야겠다고 하면 비용이 추가된다"며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다. 또한 미국에서는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자칫 수천만원의 비용이 나올 수 있어 신중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일부 우리나라 환자들은 구급차를 응급실로 가는 '택시'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응급실 "외상,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 의료진과 환자 간 '응급'에 대한 관점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지역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예를 들어 항암 치료 중 복수가 차거나 열이 나면 환자들은 중증으로 생각해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응급실 입장에선 외상, 심근경색, 뇌졸중, 심정지 환자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열상(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을 꿰매는 처치는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굳이 성형외과 의사를 요구하는 환자도 있다. 야간 당직으로 성형외과 의사를 둘 수 있는 병원이 잘 없기 때문에, 작은 상처를 꿰매려고 권역외상센터로까지 오기도 한다"며 "경증 환자가 대학병원 응급실 문턱을 넘으려면 '돈을 훨씬 더 많이 내세요'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구경북 의료계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이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환자들이 더욱 대학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경향이 짙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역사적으로 지역에 대학병원이 많다 보니 2차 병원들의 역할이 전반적으로 축소된 측면이 있다"며 "1차 의료기관과 3차 의료기관 사이에서 징검다리, 허리 역할을 하는 병원의 역량과 역할을 키우고 환자들이 분산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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