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경남 통영시. '다도해'라는 명성답게 섬이 둥둥 떠있는 바다, 분홍 벚꽃이 즐비한 만을 배경으로 한 통영국제음악당에 전국 각지에서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2023통영국제음악제(이하 통영 음악제)가 31일 막을 올려 9일까지 통영을 뜨겁게 달군다. 통영 출신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념하면서 매년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 축제인 통영음악제는 올해 '경계를 넘어(Beyond Borders)'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장르와 시대, 동(東)과 서(西), 서로 다른 음악 세계 등의 경계를 넘는다는 주제에 맞게 기존 연주 관행을 탈피한 현대음악의 매력이 쉴 틈 없이 몰아쳤다.
올해 음악제에서는 탄생 100주년 맞은 거장 작곡가 죄르지 리케티와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주요 작품 등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색다른 25번의 무대가 펼쳐진다. 체코 대표 현대음악 작곡가 온드레이 아다멕,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한국의 스타 피아니스트 김선욱 등이 참여했다.
진은숙 예술감독은 3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좋은 작품이면 어떤 형식과 시대의 것이든 거리낌 없이 선보이고자 했다"며 "장르도 클래식뿐 아니라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 북오브 워터 프로젝트 같은 작품 등을 다양하게 포함했다"고 밝혔다.
◆낯선 현대 음악의 매력 속으로
고전적인 화성학과 관현악 형식을 따르는 고전 클래식 음악과 달리 현대 음악은 생전 처음 보는 악기와 음악 기법이 등장한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음악 형식으로 1옥타브 12개의 음이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음악 기법을 쓴다거나 기존 악기를 다르게 연주하는 실험적인 기법과 극적인 표현, 무질서한 진행 등이 이루어진다. 미국의 케이지가 창시한 우연성의 음악은 악보에 오선을 쓰지 않고 검은 점, 격자 모양 등 도형 악보를 이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연주도 그만큼 어렵다. 현대 음악은 연주자마저 쉽게 연습할 수 없는 곡들로 음악제 등 공연장에서 쉬이 들을 수 없는 음악이다.
진 감독은 "현대음악에 국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현대 음악의 거장 윤이상 작곡가를 기리기 위해 탄생한 음악제인 만큼 올해 공연 중 가장 큰 매력은 현대 음악이다.
첫 포문은 해리 파치의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이 열었다. 이름과 생김새조차 낯선 타악기와 현악기에 연주자들이 차례로 등을 보이고 섰다. 마치 뮤지컬 공연장에 온 듯 이들은 연주 중 수차례 다른 악기로 이동해 두드리고 누르며 집어 뜯었다. 정적인 연주만 보던 관객에겐 다소 낯선 모습이었다.
바이올린을 눕혀 마치 가야금처럼 연주하던 연주자는 중간중간 노래도 이어갔는데, 가사마저도 형태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으로 이루어지거나 숫자 1에서 20까지 세는 말들로 구성됐다.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발명한 악기와 한 옥타브를 43음으로 나눈 미분음 음계로 연주되는 20세기 미국의 작곡가인 해리 파치의 공연 특성이다.
이어 개막작인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Ⅰ' 공연도 기존 예술공연의 벽을 허물었다. 데이비드 로버트슨 지휘 아래 8명의 중창단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1부에서 우치아노 베리오의 심포니아를 연주했다. 성악가 역시 중얼거리는 듯한 말을 내뱉거나 '이'나 '아' 등 모음 등으로 노래를 구성해 공연의 입체감을 더했다. 2부에서는 통영국제음악당 상주 연주자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첼로 연주, 무아지경 속으로
"곡을 끝내면 너무 힘들 것 같아 앵콜곡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듣고 싶은 곡 있나요?"
1일 오전 11시 공연에서 관객은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2022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한재민 첼리스트의 1시간 30분간의 열정적인 공연이 막 끝난 참. 곡이 끝난 뒤 관객의 열렬한 환호로 4차례나 무대로 다시 불려 나온 한 첼리스트는 쑥스러운 듯 앵콜곡이 없다며 고백했다. 관객석에서 여러 클래식 음악 제목이 터져 나오자 그는 첫 곡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를 다시 연주했다.
아직 10대 중반의 나이인 한재민 첼리스트의 연주는 나이를 잊게할 만큼 성숙했다. 첼로 현을 손으로 짚을 때마다 내쉬는 거친 숨소리와 음악에 몰두하는 듯한 인상, 온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흘러나오는 이마의 땀방울 등이 큰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관객석의 불이 꺼지고 핀 조명을 받은 그는 마치 무아지경의 세계에 도달한 듯했다.
고전 클래식 음악 후 리게티, 윤이상, 코다이의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그의 표정은 한층 더 압권이었다. 현을 손으로 뜯고 악보를 넘기는 몸짓 하나마저 연기를 하는 듯 그 자체로 예술이 됐다. 그의 패션 재치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였다. 이날 한 첼리스트는 검은 캐주얼 정장에 빨간 양말로 패션의 포인트를 뒀다.
한편 31일 통영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모두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날 문 전 대통령 내외는 통영 음악제 개막 공연을 찾으면서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개막 공연 전 통영국제음악당 옆에 마련된 윤이상 작곡가 묘역을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통영 영운항에서 열린 제12회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 김건희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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