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빨라진 벚꽃 개화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경영학 박사.사회복지사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경영학 박사.사회복지사

벚꽃이 80% 이상 필 때를 만개(滿開)라고 한다. 전국 각지의 지자체는 벚꽃 만개에 때맞춰 축제를 연다. 특히 올해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축제 같은 축제'를 기대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개점휴업으로 큰 고충을 겪었던 상인들 입장에선 벚꽃 축제가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이 되길 고대했다. 하지만 올해 벚꽃 축제는 '벚꽃 없는 축제'가 될 판이다. 올해 벚꽃이 평년(1991~2020년 평균)보다 최대 16일이나 일찍 개화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탓이다. 현재의 온난화 속도가 계속될 경우 21세기 후반쯤 봄꽃(개나리·진달래·벚꽃) 개화 시기는 23~27일 앞당겨져, 대구의 벚꽃 개화일이 2월 27일 정도로 예상된다. 벚꽃의 빠른 개화는 축제 시기의 문제뿐만 아니라 생태계 혼란에 따른 인류의 식량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봄꽃이 피면 곤충 등 생태계 구성 요소들은 계절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봄꽃 개화 시기가 크게 당겨지면 식물과 곤충 등 종(種) 간 '탈동조화' 현상이 빚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꿀벌이다. 야생벌들은 대부분 땅속에서 겨울을 보내는데, 땅속은 대기보다 늦게 따뜻해지는 경향이 있다. 올해처럼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거나 봄에 건조하면 대기와 땅속의 온도 격차는 더 커진다. 너무 일찍 핀 봄꽃은 수분을 매개할 벌이 없고, 땅속에서 뒤늦게 깬 꿀벌들은 꽃(먹이)이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든 야생벌의 밀도는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적 불일치로 인한 야생벌의 감소는 더욱 악화할 우려가 크다.

기후변화는 철새에게도 치명적이다. 제비는 통상 3월 말에 제주나 남해안에 도달하지만, 온난화로 너무 일찍 한반도에 왔다가 한파를 만나 집단 폐사하는 경우도 목격된다는 소식이다. 인류 역시 지구 생태계의 구성 요소이다. 벚꽃이 너무 빨리 핀다는 것은 지구의 기능이 붕괴되고 있다는 조짐인 만큼 인류도 부정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봄꽃의 개화와 벌의 수분, 농작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을 고려할 때, 빨라진 벚꽃의 개화는 인류의 식량 위기를 예고하는 경보일 수 있다. 벌써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 벚나무의 처량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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