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임금은 공정(公正)한가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고금리에 따른 역대급 실적으로 주요 은행들이 1조 원대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잔칫상은 서민들에게서 짜낸 이자로 차려졌다. 은행들은 '돈 잔치', 서민들은 '빚잔치'다. 에너지 요금 폭탄이 서민 삶을 할퀴고 있는데,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지난해 억대 연봉자는 5천 명을 넘겼다. 정부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를 메꾸기 위해 전기·가스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 두 기업의 자구 노력은 드러나지 않는다.

은행과 공기업은 고임금 직장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허탈하고 화가 난다. 지난해 주요 은행 평균 연봉은 1억 원을 넘어섰다. 취업 준비생들은 은행, 공기업 같은 '신(神)의 직장'에 들어가려고 청춘을 갈아넣고 있다. 성과급 잔치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은행과 공기업이 민간기업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법에 따른 진입 장벽과 정부가 보장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에 두둑한 임금이 가능하다고.

임금의 공정성을 얘기하려 한다. 임금은 생계 기반이며,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40대 대학 강사의 소득은 은행원 초임보다 못하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는 최저임금을 받는다. 예술가들은 밥벌이를 못 해 창작을 포기하고 있다. 우리 삶과 공동체에 꼭 필요한 교육, 문화예술, 돌봄 노동이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이러고도 한국이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 미국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런저런 직업의 시장가치가 그것이 공동선에 기여하는 정도와 비례한다고 보면 오류"라고 했다.

임금 격차는 많은 문제를 낳는다. 근로와 임금의 공정성이 훼손된다. 근로와 임금의 공정성은 노동을 고용주에게 제공하고 합당한 보수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 노동에 대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공정하지 않다. 임금 격차는 고용시장의 불균형을 부른다. 누구나 월급 많은 은행, 공기업, 대기업에 입사하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중소기업의 성장은 요원하다.

통계개발원의 '국민 삶의 질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379만5천 원 ▷비정규직 168만1천 원이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이 44.3%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차이도 크다. 2021년 월 임금 총액은 직원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540여만 원이다. 반면 300인 미만 사업체는 절반인 290여만 원이다. 대기업이 4명 이하 기업보다 임금이 얼마나 더 많은지 국가별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격차는 더 심각하다. ▷한국 3배 ▷미국 1.2배 ▷일본 1.5배 ▷프랑스 1.6배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는 '원·하청 간의 수익성 격차'에서 비롯된다. 2021년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률은 6.3%이나, 1차 하청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2.1%에 그쳤다.

지난 2월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는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의 임금 격차 줄이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재열 상생위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IMF 외환위기와 세계화 등을 거치면서 국내 임금 체계에서 심각한 이중구조가 고착화됐다"고 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공정하지 못하며,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임금 격차가 해소되면 한국은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과도한 대학 진학률과 입시 경쟁은 물론 사교육비(작년 26조 원)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불공정한 노동과 임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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