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영의 풍수이야기] 〈10〉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의 고향, 청도군 이서면 대곡 1리 마을

온화한 성품 두 목민관 배출, 신선 노니는 명당이로세!
큰골 계천 중심 형성된 곳 마을 둘러싼 산, 깊고 웅장
경북도지사 3선 역임 이의근, 동생 청도군수 출신 이중근
신선처럼 부드러운 기질 탓 바람 오히려 치는 곳 좋아
청룡방 산 중턱 선영 으뜸

청도군 이서면 대곡1리 전경.마을이름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대단히 크고 웅장하다.
청도군 이서면 대곡1리 전경.마을이름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대단히 크고 웅장하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과 청도군 이서면을 경계 짓는 '팔조령(八助嶺)'은 문경새재 다음으로 높은 고개로, 조선시대에는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이었다. 옛날 이곳에 산적이 너무 많아 여덟 명이 모이지 않으면 넘어가기 어려울 만큼 험준한 고개라 '팔조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팔조령' 동쪽 너머에는 이서면 대곡리 마을이 있으며 북쪽은 상원산, 동쪽은 남성현재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정자 이름이 신선이 노니는 곳의 의미인 선유정(仙遊亭)이다.
마을 정자 이름이 신선이 노니는 곳의 의미인 선유정(仙遊亭)이다.

가장 안쪽 마을인 대곡 1리 '한실'은 조선시대에는 상대곡동(上大谷洞)으로 불렀다. 큰골의 계천(溪川)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큰골 마을이라는 뜻에서 '한실'로 부르고 한자로 '대곡(大谷)'으로 표기하였다. 이름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대단히 크고 웅장하다. 깊은 산속에는 신선이 산다는 말이 있다.

이는 풍수 물형으로 선인형(仙人形)과 연관이 있다. 한실 마을에는 신선과 관련 있는 지명으로 추정되는 '구름박골', '흰들골'이 있다. 마을 정자 이름이 신선이 노니는 곳의 의미인 선유정(仙遊亭)이다. 산세와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 생가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 생가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온화한 미소를 지닌 달변의 행정가

이곳 경산 이씨(京山 李氏) 입향조는 이인구(1686~1758) 선생으로 자는 응여(應汝)이며 학가재 이주(李綢) 선생의 증손으로 우애가 두터웠고, 조상의 유덕을 추앙하며 후학들을 훈도했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 선생의 재사인 모암재(慕巖齋)가 있다. 고 이의근(李義根, 1938~2009) 전 경북도지사, 이중근(李重根, 1942~ ) 전 청도 군수가 이인구 선생의 후손으로 이 마을 출신의 대표적 인물이다.

두 분의 생가는 한실 마을 중간 대곡천 옆에 있다. 약 150년 정도 된 소박한 집이다. 본래는 초가집이었으나 뒤에 기와로 바뀌었다고 한다.

2006년도 발간한 이 전 지사의 저서 『이의근의 목민실서』-히말라야시다의 증언을 들으리라-에 의하면 청도에서 대구에 가려면 '팔조령'을 넘어 우록삼거리까지 와서 버스를 타야 했는데, 고등학교 재학 시절 '팔조령'을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혼자 넘었다고 한다. 버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가창면 소재지까지 10㎞를 더 걸어와서 대구행 버스를 타기도 했다고 하니 학구열과 의지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의근 지사 묘소와 비석
이의근 지사 묘소와 비석

그는 대구상업고등학교(현,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재학 중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스물세 살의 나이에 대구시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매사 청렴·정직·성실로 임한 결과 직업공무원으로서는 최고위직인 1급 관리관을 거쳤다. 주요 공직으로 경기도 부천시장과 안양시장을 거쳐 내무부 지역경제국장과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냈다.

이어 1993년 관선 도지사를 지내고 대통령 행정 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부터 경북도지사를 3선 연임했다. 도지사 재임기간 동북아지역자치단체연합 초대의장과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 전 지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닌 달변의 행정가로 대구·경북 지역에 큰 족적을 남겼다. 뛰어난 행정 능력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2006년 퇴임한 그는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민선 3선 임기(11년)를 무사히 마친 기록을 갖고 있다.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의 부모 묘소(아래)와 조부모 묘소(상단)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의 부모 묘소(아래)와 조부모 묘소(상단)

재임 기간 동안 지방 자치 단체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인 동북아 자치 단체 연합[NEAR]의 창설을 주도해 한국과 일본·중국 등 6개 국가 40개 자치 단체가 가입한 NEAR의 상설 사무국을 포항에 유치하였다. 또한 세계 최초의 문화 박람회인 경주 문화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캄보디아 등지에 수출까지 한 것은 지방 외교의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인터넷 새마을 운동을 통해 지역 간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등 도·농 상생 기반 마련, FTA 기금 지원, 고품질과 친환경 농업 육성을 통해 농업 경쟁력을 향상, 국가공단 조성과 외국기업 유치, 신성장 동력산업 육성, 중소기업 지원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경북을 '앞서가는 자치단체'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 전 지사는 중학교 때 은사에게 들은 "죽은 고기는 아무리 커도 물을 따라 흘러가지만, 작은 피라미라도 살아 있는 한 물을 차고 거슬러 오른다."는 말을 평생 공직생활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2000∼2007년영남 대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하였고,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신 대학교 총장과 한나라당 국책 자문 위원장, 새마을 운동 중앙회장 등을 지냈다.

◆동생 이중근 청도군수

동생 이중근은 협성상업고등학교(현,협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야대학교 학사,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경북 칠곡군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하여 40여 년간 대구시에서 근무하며 대구시청 총무과장, 대구시 중구청장 직무대리, 동구청 부구청장, 대구도시개발공사 사장, 국제기아대책기구 대구지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2008년 경북 청도군수 재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후 재선에 성공한다. 이후 3선 출마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며 깨끗하게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처럼 목민관(牧民官)이 한 명만 출하여도 가문의 영광이라 할 만한데 형제간에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여 말단 공무원이 되고 나아가 목민관이 되기까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근원을 풍수학적으로 규명 해 본다.

조안산은 목성귀인으로 목민관이 출한다는 사격이다.
조안산은 목성귀인으로 목민관이 출한다는 사격이다.

◆안산은 목성귀인(木星貴人)

두 분의 선영은 생가 터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청룡방 산 중턱에 있다. 상단에는 조부모, 그 아래에 부모, 그 옆에는 이 전 지사의 묘소와 비석이 있다. 이 중에서 상단에 있는 조부모 묘소가 대명당으로 목민관이 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운이다. 아래의 부모 묘소는 중급의 명당으로 쌍분으로 모셔져 있으나 혈장 사이즈가 작아 합폄으로 모셔야 되는 자리이다.

안산은 토성(土星)장 하 목성귀인(木星貴人)으로 이는 목민관이 출한다는 사격이다. 형기적으로 보기에는 청룡과 백호가 허하여 혈장을 보호하지 못하고, 혈증도 뚜렷하지 않지만 선인대좌형(仙人對坐形)의 명당으로 명사 소점지이다.

신선은 바람, 구름과 연관이 많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 치는 것이 오히려 좋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가 명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선의 하단전에 맺힌 진좌 술향(辰坐戌向)의 자리이다. 두 분의 목민관이 일을 처리함에는 항상 신중하고 급할 것 없으며, 부드러운 기질은 신선에 비유할 만 하다.

이 전 지사는 투병 중인 전립선암이 재발하여 71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국가를 위하여 한참 일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운명을 달리하니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 사후 고향인 청도야외공연장과 고령군 우곡면 포리 소공원에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건립되었다. 오늘 따라 그의 온화한 미소가 더욱 그립다.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 인 영 풍수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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