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산불과 단비, 자연과 인간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김승동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식목일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지난 2일 하루 34건의 산불이 났고, 3일에도 10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났다. 봄철 산불 발생에 대비해 지난달 초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한 정부의 대응을 무색게 했다. 이례적인 산불에 공포심이 일어나고 이게 자연발화가 맞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중 대전, 충남 홍성과 금산은 '산불 3단계' 발령까지 올라갔다. 산불 3단계는 산림 100㏊ 이상, 즉 축구장 130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일 때 발령하고, 비상 상황에 대한 지휘권도 기초단체장에서 시도지사에게 넘어간다. 그만큼 피해 규모가 클뿐더러 인력·장비도 더 많이 투입돼야 한다. 대전과 충남 홍성·당진·보령 등 충청도 4곳에선 축구장의 3천200배가 넘는 2천344㏊ 정도가 피해를 입은 '산불영향지역'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산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산림 피해는 엄청나고 한평생 살던 집이 불타면서 졸지에 이재민들이 발생했고, 애지중지하던 가축도 수백 마리가 죽고 문화재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번 산불은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이상한 면도 있었으나 자연발화로 여겨진다. 방화는 아닌 것 같다는 게 소방 전문가들의 1차 진단이다. 봄철 이상고온과 가뭄 장기화 등의 이상기후 때문이라는 것이다. 벚꽃도 예년보다 2주 앞당겨 핀 후 벌써 다 지고 있고 남부지방에 '50년 만의 최악 가뭄'이 찾아올 정도라고 하니 수긍이 된다.

산불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대표적 재난이 됐다. 우리나라 기후가 동남아처럼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지면서 산불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형 산불도 미국 캘리포니아나 브라질의 아마존 등처럼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3월 울진 산불이 열흘 가까이 계속되면서 산림 약 2만㏊를 집어삼킨 바 있다.

산불은 예방이 최선이다. 산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들이 그동안의 강력한 식목 정책으로 이제 어느 정도 푸르러진 만큼 앞으로는 간벌 등으로 산불과 산사태 예방 등 재난재해를 막고, 임업인들의 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산림자원 고도화 정책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비교적 불에 잘 타지 않아 산불 확산을 차단하는 내화(耐火)수림대의 구축이 요구된다. 우리 산림 중 40%가 소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림인데 침엽수에는 송진 등 기름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산불 발생 시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달리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은 나뭇잎에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대표적인 '내화 수목'으로 불린다.

또 산불 발생 때 진화와 확산 방지에 큰 역할을 하는 임도(林道) 확충도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나라 산림에 설치된 임도는 3.97m/㏊로 독일 54m/㏊(14분의 1), 일본 23.5m/㏊(6분의 1)와 크게 비교된다. 소방헬기의 현대화 추진도 시급하다. 산림청 보유 헬기 48대 중 32대(67%)가 연식이 20년 넘고 30년 이상 된 낡은 헬기도 11대나 된다고 한다.

국제 환경 전문가들은 앞으로 전 세계에서 산불 피해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이미 지난해 '이례적인 산불 위협의 증가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대형 산불이 14% 증가하고, 2050년까지는 30%, 세기말에는 50%까지 늘어날 것으로 밝힌 바 있다. 산불은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야기한다. 산림이 파괴되면 야생동물 서식지가 사라지고, 홍수 등 2차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산불이 대기 온도를 높이고 습도를 떨어뜨려 산불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산림·소방 당국이 며칠 동안 수많은 인력과 헬기 등을 동원해 사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4일 밤부터 단비가 내려 모두 진화됐다.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자치단체장은 산불이 날 때 골프 연습장에 가거나 술자리에 간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는데 산불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지구의 자정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우리도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주말엔 축구장 20개 면적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는 인왕산을 찾아 화마로 입은 돌 하나 나무 하나라도 그 상처를 보듬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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