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IN] 독립투사 후손·재일동포 허미미‧허미오 유도 자매 '금빛 엎어치기'

"한국 대표 올림픽 출전, 할머니 유언 지킬게요"
한국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 사이 태어나…日 국적 포기하고 경북체육회 입단
독립운동가 허석 후손 밝혀져 화제…언니는 메달리스트 꺾고 간판 증명
日 고교랭킹 1위 동생도 실력 입증…안창림 코치와 올림픽 금메달 노려

경북도체육회 소속 코치 안창림(왼쪽)과 허미미, 허미오 자매. 경북도체육회 제공
경북도체육회 소속 코치 안창림(왼쪽)과 허미미, 허미오 자매. 경북도체육회 제공

"우리 꿈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거예요. 힘들 땐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나아가려고 해요."

허미미(21)와 허미오(19)는 재일동포 출신의 유도 선수 자매다. 이들은 '유도 종주국'인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최근 경북체육회 사무실에서 만난 허미미‧미오 자매의 첫인상은 경기장 안에서의 당찬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또래들처럼 방탄소년단이나 인기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한국말은 다소 서툴렀지만 칭찬에 쑥스러워했고, 미용과 화장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유도와 국가대표에 관해 얘기를 할 때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 이들의 진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할머니 "한국 대표로 올림픽 나가길" 유언

한국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매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유도 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유도를 배웠다. 타고난 재능 덕분인지 두각도 빨리 드러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유도를 이어가게 된 것은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남긴 "꼭 한국에서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유언 때문이다. 할머니의 뜻을 잇기로 결심한 허미미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지난해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다. 허미오는 올해 초에 경북체육회에 입단했다. 동생 허미오는 지난해 11월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허미미의 입단 과정에선 이들 자매가 독립운동가 허석(1857~1920년)의 후손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허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지역에 항일 격문을 붙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던 독립투사로, 경북 군위군에 순국기념비가 있다.

김정훈 경북체육회 유도팀 감독은 "선수 등록을 위해 허미미의 본적지인 군위를 방문했다가 미미의 현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아이들도 이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타고는 재능…유도 간판으로 성장 중

한국으로 온 뒤 허미미가 국제대회 금메달 3개를 획득하기까지, 반년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도 줄줄이 꺾으며 자신이 한국 여자 유도의 간판임을 입증했다.

지난 1월에는 포르투갈 알마다에서 열린 2023 포르투갈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여자 57kg급 결승전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하파엘라 시우바(브라질)를 상대로 연장전 승부 끝에 업어치기 한판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허미미는 지난해 6월 시니어 국제대회 데뷔전인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한 데 이어 10월 아부다비 그랜드슬램에서는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노라 자코바(코소보)를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해 1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2022 IJF 마스터스 국제유도대회에선 동메달에 그쳤지만, 이 과정에서 자코바를 다시 한번 꺾으며 이름값을 증명했다.

승승장구 끝에 세계 랭킹 4위까지 오른 허미미는 "국제무대에서 마주쳤던 선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코소보의 노라 자코바였다"며 "도쿄올림픽은 내가 가장 감명받은 대회 중 하나였는데, 당시 우승을 차지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맞대결을 앞두고는 정말 기뻤다"고 했다.

지난 1월부터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동생 허미오도 일본 고교랭킹 1위까지 오른 기대주다. 2021년 일본 고교 선수권에서는 1학년임에도 불구, 2, 3학년 선배들을 제압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다만 아직 국제무대에 데뷔하지는 못했다. 당장 세계적인 강호들과 겨루기에는 경험도 체력도 조금 부족하다. 현재는 언니 허미미와 함께 국가대표 선수촌에 입소해 실력을 갈고닦는 중이다.

허미오는 "언니와 함께 즐겁게 운동을 하니까,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내가 한국행을 결정한 것에도 언니의 영향이 컸다. 앞으로의 여정도 둘이서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출신 유도 선수 허미미(오른쪽)와 허미오 자매. 경북도체육회 제공
재일동포 출신 유도 선수 허미미(오른쪽)와 허미오 자매. 경북도체육회 제공

◆목표는 올림픽 金…'멘토' 안창림 동행

허미미‧미오 자매는 여전히 할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바로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허미미는 "지금까지 세계무대에서 만난 선수들은 모두 쟁쟁하지만, 특히 내 체급에서 올림픽 금메달권으로 분류되는 일본과 캐나다 국적의 선수들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일단 랭킹 관리를 잘해서 올림픽 때 좋은 시드 배정을 받는 게 우선과제"라고 말했다.

목표가 목표이니 만큼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른다. 대회가 없을 때면 새벽부터 체력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면서 몸을 만든다. 체력과 정신력을 중요시하는 한국 유도 훈련 방식은 유도 기술에만 집중하는 일본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자매는 두 나라 유도의 장점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할 '특급 멘토'도 있다. 바로 한국 유도의 간판 안창림이다.

2018 세계선수권 남자 금메달,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 등을 석권한 안창림은 지난달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지도자로 합류해 허미미‧미오 자매에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재일동포 출신인 안창림은 자신의 걸었던 길을 따라오는 후배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지도하는 중이다.

안창림은 "두 친구 다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미미는 훌륭한 마음가짐까지 갖췄다. 내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선수"라며 "재일동포 선수로서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항상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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