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게임회사에는 원화가, 컨셉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있었다. 개발팀이 게임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그것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려주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옛날이란 1년 전이다.
달E-2, 미드 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노벨 AI 같은 그래픽 생성 인공지능들이 출시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공지능이 인간 원화가보다는 어설프지만 그림을 무임금으로, 빨리, 24시간 그렸다. 이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게임회사에서 원화가라는 직업은 사라졌다. 심하게는 그래픽 디자인 파트라는 직군 자체가 없어진 회사도 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대혁신을 촉발하고 있다. 3월 27일 골드만삭스 보고서는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향후 10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3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예측했다. 반면 이러한 일자리 혁신으로 세계 경제는 연평균 7퍼센트씩 비약적으로 성장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인생의 10년, 20년을 투자해서 가지고 싶었던, 너무 사랑했던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동시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인공지능 법제화 시장이다. 3월 31일 이탈리아 데이터 감독청(ISA)은 자국 내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 챗GPT 개발사가 인공지능 모델 학습에 사용할 목적으로 이탈리아 국민의 데이터를 대량 수집하는 행위는 충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데이터 감독청의 사용 금지 조치는 유럽 연합 개인정보 보호 규정(GDPR)에 의거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전 세계에 걸쳐 실행될 법제화의 시작이다. 법제화는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낳는다. 인공지능은 와해적 혁신으로 사회 불안을 유발하는 현상 파괴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법제화는 이러한 신기술이 현실 사회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정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필수적인 일자리를 만든다.
인공지능 법제화는 인문 기술 융합의 새로운 능력을 요구한다. 우리는 챗GPT의 출현에 관해 투표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성형 인공지능은 3개월만에 세계 10억 명의 노동과 생활을 변화시켰다. 지금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인문 기술 융합의 혁신이지 대중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인문 기술 융합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력과 그것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는 고도의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인공지능 법제화 시장의 선두에 있는 곳은 유럽 연합(EU)이다. 유럽 연합은 2018년에 개인정보 보호 규정, 2019년에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 라인,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유럽 연합의 규정을 본보기로 자국의 법령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인공지능 관리의 출발은 법제도에 우선하는 윤리 검증이다. 기술혁신이 수십 억의 사람들을 고용시장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하면서 사회가 각박해졌다. 신기술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이러한 무수한 사례들에 일일이 법을 적용할 수 없고 일차적으로 윤리 검증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각국은 채팅 분석을 통한 악성 대화 탐지 기술, 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는 아바타의 행위 기반 어뷰징(abusing) 탐지 기술, 텍스트 기반 증거 채집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기술을 적용할 척도, 즉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보편적인 인공지능 윤리 검증도 연구하고 있다.
지난 정보화 혁명은 지역별로 심각한 일자리 불평등,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초래했다. 정보화 혁명으로 인한 생산성의 향상은 한국의 경우는 수도권, 미국의 경우는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에 집중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촉발한 현재의 지능화 혁명 역시 지역의 운명이 달라지는 엄청난 불균등 발전을 낳을 것으로 예측된다.
경북은 16세기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을 낳은 지역이다. 특히 퇴계 철학은 다종다양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용가능한 윤리 원칙과 절차들을 만들었다. 인공지능 윤리의 표준으로서 복잡한 상황을 변별할 수 있고 각기 다른 문화의 요구사항에 맞게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16세기 퇴계의 출현은 윤리적 척도의 새 시대를 열었다. 퇴계 이전 대중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인간상은 군자(noble man)였다. 군자는 소인에 대비되는 인격자로서 공공의 행복을 위해 유덕하고 선한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군자는 대중에게 친근한 만큼 세속적 현실로부터의 초월성은 크지 않았다.
퇴계는 이 같은 대중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성인(Sage)으로 바꿔놓았다. 성인은 고귀한 도덕적 인간의 완성태로서 세속적 현실에 대해 강한 긴장 관계를 갖는다. 퇴계는 주자학의 공부론을 발전시켜 평범한 보통 사람이 독서와 일상생활의 실천을 통해 이러한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공경에 머물고(거경) 이치를 깊이 따져서 연구한다(궁리)는 절차를 만들고 그 절차에 입문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정립했다.
퇴계는 <도산십이곡>에서 "연하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니 /이 중에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고자"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퇴계 철학은 자연에 대한 몰입적 경험으로부터 나와 타자가 함께 사는 공생의 윤리를 찾고 이를 다시 사회적 실천의 윤리로 발전시키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탑재한 제품이 쏟아지는 지금 퇴계 철학에 기반한 인공지능 윤리 모델은 보편적인 검증 기준을 제공한다. 이 모델은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에서 비윤리성을 판별할 수 있고 결과물에서 원래의 윤리 기준에 따라 학습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경북 인공지능 시대는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재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인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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