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광섭의 자명고 (自鳴鼓)] 우리의 국호를 생각한다

중국이 탁록에 삼조당을 세워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삼조는 치우, 황제, 염제(왼쪽부터)를 말함.

2017년 4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간에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은 무슨 이유인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발언을 했다. 한 나라 지도층의 역사 인식은 국제정치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친다.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트럼프에게 역사적 연고가 있는 것처럼 언급한 것은 필요시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 아니겠는가.

일찍이 모택동이나 주은래, 거슬러 청말 한(漢)족계 정치인 이홍장도 요동 지역을 조선의 땅이며 조선은 중국과 별개의 역사라고 했다. 그럼에도 시진핑이 직접 나서 터무니없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 사건을 어찌 예사로 넘길 수 있겠는가. 역사적 연고를 따진다면 정작 중국 본토는 주인이 따로 없었으며 그때마다 등장한 강성한 민족이 지배해 왔다.

지금 중국의 강역은 여진족이 이룬 것이다. 중국 한(漢)족, 정확히는 하화족(夏華族)의 역사야말로 이민족의 역사이며 이민족 역사의 일부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가 간과해 온 '국호'에 대해 짚어보자. 우리 역사에는 강역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으며, 국호에는 그 답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려'라는 국호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려 태조는 발해를 형제국으로 여겼고 북진정책을 제1국시로 삼았다. '조선'이란 국호는 어떠한가. 고려와 차별되는 개국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고구려를 넘어서는 고조선에서 답을 찾았다. 상고 이래 면면히 내려오는 다물 사상과 당대 지배층이나 식자층의 염원을 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국호는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

국호 제정에 명 태조가 등장하는 것은 당시 내외 정세에 따른 형식상의 의전 정도로 볼 것이다. 사실 명나라는 강력한 통일제국 수와 당을 패퇴시켰던 동이족 조선의 요동 진출을 매우 경계했다. 요동 정벌은 늘 잠재되어 온 우리 동이족의 숙원이었고 비록 조선이 개국 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으나 그 나름의 준비를 했으니, 양국 간 긴장의 일면을 미루어 알 수 있다.

한(漢)족의 이러한 우려는 거의 생리적인 것이다. 한때 '포청천'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한 적이 있다. 포청천이 산동 모 지역을 시찰하면서 '고려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경계를 잘해 달라'는 대사가 나온다. 송나라 역시 고려인들이 옛 땅을 찾겠다고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는 비근한 방증이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으며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 때(1492년) 단군을 모시는 숭녕전을 건립한 것은 그 뜻을 따른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한'(韓)의 근거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한(韓)은 대한제국에서 따온 것이다. 국호 변경에 치열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나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에 선포되었다. 당시는 청일전쟁 이후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일련의 사건으로 조선 왕조의 체면이 손상될 대로 손상된 상태였다. 성난 민심을 달래려면 국호를 제정함에 있어 고조선의 이미지를 보다 일신해야 했을 것이다.

대개 한(韓)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삼한일통의 한, '삼한의 한(韓)'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삼한이란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다는 '마한‧변한‧진한'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광무'라는 연호와 함께 의기찬 독립제국의 출범을 만방에 천명하는 터에 기껏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다는 '삼한'을 제국의 이상형으로 삼는다는 것은 아무리 무능한 왕조라 하더라도 상식 밖이다. 삼한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보자.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을 형상화한 것

고조선은 그 전성기에 진(신)조선, 번(불)조선, 막(말)조선의 삼조선으로 나누어 통제를 했고, 그 삼조선을 다스리는 왕을 삼한이라 했다고 한다. 즉 한(혹은 간, 칸)은 '왕'이라는 우리 말이며, 한(韓)은 그 음역이다. 진(신)조선이 맹주 역할을 하였는데 대개 요하~만주 지역에 걸쳐 있었고, 번(불)조선은 기자와 위만조선, 한사군이 있었다고 하는 난하~중국 내륙 일대, 막(말)조선은 지금의 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

중국이 탁록에 삼조당을 세워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삼조는 치우, 황제, 염제(왼쪽부터)를 말함.

이후 삼조선의 삼한은 왕호와 국호가 혼용되어 여러 변천을 거치면서 마한‧변한‧진한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산해경에는 삼한이 모두 옛 진(古辰)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진(辰)은 진조선(신한, 진한)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즉 삼한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동이족의 가장 실재하는 모습을 이르는 것이라 하겠다. 좀 더 보자.

우리 말 '한'에는 '왕'이라는 의미 외에 '하나' '크다' '희다' '환하다' '밝다' 등의 의미가 있다. 한(국)이나 환(국), 배달(국)은 다 그 음역이다. 근자에 중국에서 발굴된 대문구문명이나 홍산문명은 모두 우리(동이)의 역사로 밝혀지고 있다. 연대를 고증해 보면 당시 산동과 요녕 일대는 현 중국 한족과는 전혀 무관하며 동이족의 활동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제(黃帝)를 시원으로 하는 중국이 종래의 입장을 바꾸어 전설상의 염제뿐 아니라, 사마천이 괴수라고까지 묘사했던 치우천왕의 석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선조인 양 선전하고 있다. 치우천왕은 황제(黃帝)와 중원의 패권을 놓고 크게 싸웠던 동이족의 영걸로 추정한다.

동이족을 한족으로 둔갑시키려는가.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제 완연한 우리의 대중문화 자산이다. 국호 '한'의 근거는 음역 한(韓)을 버리고 신시 시대를 더 거슬러가야 할 것 같다.

일본 자위대 간부학교의 전사 책임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의 역사를 고조선으로부터 설명해 주니 모든 한국민이 그렇게 알고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당연히 그렇다고 하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튀르키예는 우리를 형제국이라며 반기지만 우리는 6‧25 참전국 이상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배달의 나라, 천손, 제천의식, 천부경, 가람토 문자, 책력, 천문(오성취루), 고인돌, 참성단, 선비와 조의국선, 낭도(화랑), 소도, 삼족오, 무궁화, 거문고 등 이 모두는 우리에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홍익인간'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시대에 더없이 부합한다.

중국의 역사 공정은 잠자고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역사 찾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좋은 성과물이 많이 나올 것이다. 특히 제도권의 관심이 중요하다. 2021년 정부는 중국에 대해 속국이라는 표현을 써 공분을 일으킨 적이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을 도와주는 꼴이었다.

역사 찾기에 종교‧정치‧학계‧언론 등 모두 마음을 활짝 열자. 국수로 내몰 일이 아니다. 우리의 뿌리를 찾고 그 원형을 복원하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국호를 생각해 본다.

윤광섭,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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