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당신들의 나라

이유 지음/ 문학동네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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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지음/문학동네 펴냄
이유 지음/문학동네 펴냄

초인종도 없는 대구 달성군의 어느 한 원룸 현관문을 두드리자 응웬티풍하이 씨 남편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집 안에 있던 응 씨의 몸은 긴장감으로 바짝 얼어붙은 듯 했다. 기자임을 알고 한시름 놨던 이들은 응 씨의 베트남 친정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작은 휴대전화 속 제일 먼저 나온 얼굴은 할머니 품에 안긴 2살 딸. 막 잠에서 깨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응씨 부부는 연신 딸의 이름을 부르다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미등록외국인인 응 씨의 부부. 한국에서 딸을 낳아 숨어 지냈지만 도저히 키울 형편이 안 돼 두 살 배기 홀로 고향으로 보냈다.

지난해 5월 진행한 대구의 미등록외국인 취재 중 한 장면이다. 보도 후 생각보다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미등록외국인에 대한 별다른 정책 지원이나 사회 변화는 없었지만, 더욱 기자의 힘을 빠지게 한 건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내용은 '불법자인 미등록외국인을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냐'는 것이었다. 늘 그런식이었다. 물론 소수의 치우친 의견이었겠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의 소식을 보도할 때마다 '추방하라', '당장 너네 나라로 떠나라', '잠재적 범죄자' 등 나쁘고 아픈 한마디들이 따라다녔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우리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자주 보고, 삶을 들여다보고, 아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당신들의 나라'

실화 같은 소설이다.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이 송환될 때까지 머무르는 '외국인보호소'라는 공간을 방문하는 화자 '나'의 이야기다. 우연한 기회로 이끌려 간 그곳에서 '나'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보호 외국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살아온 삶에 대해 듣게 된다. 실제로 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한 저자, 이유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기도 하다. 실화같은 소설의 이유다.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긴데, 주인공 '나'가 보호 외국인 9명을 만난 이야기를 담았다.

처음 만난 인물은 '파란'. 파란은 외국인보호소에 많은 날을 갇혀 지낸 장기 수용자로 고향 땅인 나이지리아에서 종교 분쟁으로 부모를 여의고 한국으로 도피해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파란은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보호소 화장실을 청소하며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한다. 자신이 인간으로 쓸모를 느끼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사람들을 이를 쉽게 알아주지 않는다.

'아나스'도 나이지라에서 온 인물. 한국에 입국한 첫날 체포되면서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 그런 아나스가 외국인보호소에서 열린 한국어 교실을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아나스는 자꾸 겁을 먹는다. 영어가 소통의 창구인 그에게 낯선 한국어는 자신과의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용도로 느낀다는 이유였다. 깨달음을 얻은 '나'는 아나스와 조금씩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어나가면서 생각과 감정을 나눈다.

책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소통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말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낯설기만 했던 외국인보호소 안쪽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직접적인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 저편에는 실제 외국인보호소에서 벌어져온 인권 탄압의 문제들도 깔려 있다. 작가는 실제 국내의 한 보호소에서 외국인의 신체를 결박해 고문한 '새우꺾기' 실화를 소설 안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그 사건으로 추정되는 가혹 행위 소식을 보도하는 식으로 나타낸다.

그러면서 '나'는 말한다. 뉴스를 통해 외국인보호소를 알게 된 이들은 그곳의 외국인들을 그저 불법 체류자이자 추방을 앞둔 난민, 수감자로 인식하겠지만 그들을 직접 본 나에겐 보호 외국인은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지닌 한 명 한 명의 자신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고.

"당신들에게는 당신들의 시간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시간이 있다" 204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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