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마츠시로 방공호의 조선인 낙서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지난겨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가지 못했던 나가노 지역에 방문했다. 이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나가노시(長野市) 마츠시로(松代) 마을에 있는 대본영(大本營) 지하 방공호에도 들렀다. 그리고 마츠시로 대본영 지하호에 한 조선인이 '大邱(대구), 大邱府(대구부)'라는 낙서를 남겼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마츠시로 방공호는 일본이 패전을 앞둔 1944년 11월 도쿄에서 떨어진 나가노 산간 지역 마츠시로에 전시 최고 통수 기관인 대본영을 옮기기 위해 건설됐다. 대본영은 전쟁 중에 구성된 일왕 직속 군대의 최고 통수 기관을 뜻한다. 마츠시로 방공호가 만들어지던 현장에 조선인의 낙서가 남아 있던 이유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방공호 작업에 강제적으로 동원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국 본토를 비롯하여, 압록강, 일본의 아이치현, 도쿄, 시코쿠에서 강제 연행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방공호 건설 작업에 밤낮없이 동원됐다.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은 연합국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흙이나 나뭇가지로 위장한, 방수가 되지 않는 임시 숙소에서 지냈기에 늘 동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게다가 방공호 작업 중 구석에 놓인 양동이에 대소변을 처리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식사를 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고 한다. 실제 지하호 공사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수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23년 3월 5일,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제3자 변제' 방식을 통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결정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 제시했다. 또한, 이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발전적 미래'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며, 반일 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집단이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역설적이게도 마츠시로 방공호 건설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린 주체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다. 나가노시의 사립고교(현 나가노 슌에이 고등학교) 향토연구반 학생들은 1960년 6월 오키나와의 전쟁터 견학을 갔다가, 마츠시로 방공호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됐고, 이후 마츠시로 지역을 견학했다. 이를 계기로 1985년 9월 학생들은 마츠시로 대본영 지하호를 평화를 위한 사적(史蹟)으로 보존하고 일반 대중에게도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일본 시민 단체는 지하호가 공개된 이후, 안내 간판에 조선인 강제 동원에 관한 설명을 전혀 기재하지 않자 이는 강제 동원의 역사를 은폐하려는 시도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1995년 8월 10일, '조선인 희생자 추도 평화 기념비'를 지하호 앞에 세웠다. 또한, '또 하나의 역사관·마츠시로' 운영위원회에서는 마츠시로 대본영 지하호 건설 당시 조선인 노동자가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위안소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1998년 2월 '또 하나의 역사관'을 개관했다.

마츠시로 방공호 사례에서 보듯이 많은 일본인들조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일본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가노 시민들은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조선인의 낙서를 역사적 기록으로 보존해 왔다. 그러한 실천이 발전적 한일 관계의 초석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제라도 고향 땅을 그리며 낙서를 남겼을 그 조선인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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