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롤스로이스는 당신의 넥타이 컬러를 봅니다

광고 의뢰서는 어떻게 작성하면 좋을까? pixabay 제공
광고 의뢰서는 어떻게 작성하면 좋을까? pixabay 제공

"저기요, 여기 김밥 한 줄 주세요!" VS "롤스로이스는 당신의 넥타이 컬러를 유심히 봅니다"

비교가 잘 못 된 것 같다. 전자는 주문을 말하고 후자는 마음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롤스로이스가 고객의 넥타이 컬러를 유심히 보는 것은 결국 '요청'을 잘 받기 위해서이다. 김밥 한 줄을 주문하면 한국인의 특성상 1~2분을 넘기지 않는다. 반면 롤스로이스는 주문을 받으면 의뢰인의 특성을 고려해 많게는 2년 가까이가 소요된다. 물론 김밥 한 줄과 차 한대 제작을 비교하겠냐마는 여기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객의 원하는 것'을 의뢰받는 일이다.

처음 광고 회사를 창업했을 때, 이 부분이 미숙했다. 그저 광고 의뢰를 하면 고객의 소리를 듣고 광고를 제작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케이션의 오류, 방향성의 차이와 같은 문제들이었다. 실제로 고객의 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광고 의뢰를 맡길 때의 생각과 광고 발표를 볼 때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광고 회사 입장에서는 의뢰인의 마음을 정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광고 의뢰서(REP, Request for proposal)였다.

사실 의뢰서는 고객의 마음을 정박시키는 용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고객의 '마음 정리'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인지조차 모른다. 자신이 원하는 것도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자신의 생각을 글로서 써보면 그것이 묘하게도 정리가 된다. 머릿속의 실타래가 글을 써보면 신기하게도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광고 의뢰서의 실질적인 기능인 것이다.

'우리에게 요청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세요'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마음이 정리되고 정박되니 광고 회사 입장에서도 편했다. 고객은 '내가 이렇게 요청서를 써드리면 이렇게 만들어주시겠구나'라고 인식한다. 의뢰서의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당신 브랜드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시장에서 차별화된 역량은 무엇인가요?' 이런 정성적인 질문부터 예산과 작업 기간을 확인하는 정량적인 질문까지 존재한다.

의뢰인은 의뢰서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광고 회사는 그것을 읽으며 고객의 마음을 본다. 이 과정은 마치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과 닮았다. 이 과정은 마치 가슴이 답답해 점집을 찾아 하소연을 하는 과정과 닮았다. '이 브랜드는 여기가 아파서 왔구나, 여기가 병들어 있구나, 어떤 약을 처방해 주어야겠구나'를 광고 회사는 파악하는 시간이다.

사실 광고 회사가 모든 의뢰를 받아주지는 않는다. 그런 회사가 있다면 잘 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고객의 브랜드가 가지각색이듯 광고 회사 역시도 그렇다. 온라인 마케팅에 강점을 보이는 회사가 있는 반면, 오프라인에 강한 회사가 있다. 브랜딩을 잘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콘텐츠 마케팅에 강한 회사가 있다. 물론 종합광고대행사도 많지만 여러 분야를 골고루 잘하는 회사를 찾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오히려 광고 회사끼리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의뢰인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자, 그럼 광고 의뢰서를 받아든 회사는 무엇을 할까? 내부적인 회의에 돌입한다. 시각디자인 팀, 영상 팀 등 실제 제작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모아 광고 의뢰서를 검토하는 시간이다. 병원에서 환자 케이스로 회의하듯, 법무법인에서 사건 케이스를 두고 회의를 하는 시간과 같다. 이때 우리 회사와 결이 맞는 브랜드인지, 우리 회사와 협업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브랜드인지 살피기도 한다. 상업주의의 꽃이 광고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예산과 같은 물리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1억을 광고 예산으로 쓴다면 3~4억을 벌고 싶은 것이 고객의 마음이다. 이것이 명확하게 보일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러면 굳이 무리해서 수주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괜히 광고 회사 배만 불러줬다는 뒷이야기를 듣기 싫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잘못된 만남이 되는 것이다. 광고 의뢰서에 대한 팁을 주자면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작성하라는 것이다.

때때로 너무 솔직하게 우리 브랜드의 문제점을 적으면 업계에서 소문이 잘못 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해 의뢰서를 예쁘게 꾸미는 경우가 있다. 가장 나쁜 방법이다. 물론 광고 회사도 그 브랜드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금방 탈로 나겠지만 혹시나 걸러지지 못한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잘못된 상황 전달은 잘못된 광고 전략으로 이어진다. 광고 회사 앞에서는 발가벗어도 좋다. 가장 솔직한 모습일 때 광고 회사도 가장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가 있다.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