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5시쯤 찾은 대구 중구 동성로. 통신골목 시계탑에서 대구백화점 본점 건물로 향하는 길 초입부터 '임대' 현수막이 등장했다. 이 250여m 거리에서 1층에 임대 현수막을 붙여둔 건물은 9곳. 대백 본점~중앙파출소 삼거리 300여m 구간에도 1층이 공실 상태인 건물이 9곳에 달했다. 특히 대백 본점 인근에 나란히 붙은 7개 상점은 모두 임차인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동성로 한 판매시설 직원은 "옛날에는 새벽 1시까지도 거리가 화려했는데 지금은 밤 10시만 되면 사람이 없다. 삼덕119안전센터 부근이나 사람이 좀 다니는 편"이라며 "지금 상황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대백 본점이 문 닫고 나니까 더 심해진 거 같다"고 전했다.
'대구 시내'의 대명사, 동성로 풍경이 예전 같지 않다. 몇 년간 국내외를 숨 막히게 한 코로나19 사태가 숙지고 있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는 모양새다. 동성로 일대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활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거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 길거리 빈 매장 늘고 사람 줄고
동성로 빈 상가는 최근 4년 새 부쩍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그런 흐름이 그대로 드러난다. 상업용부동산은 오피스, 중대형상가, 소규모상가, 집합상가로 나뉘는데 특히 소규모상가에서 연도별 공실률 차이가 컸다.
소규모상가는 일반 2층 이하이고 연면적 330㎡ 이하인 상가를 뜻한다. 부동산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성로 소규모상가 공실률은 2018년 4분기 2.3%에서 2021년 9.4%로 늘더니 2022년에는 14.8%까지 급증했다. 전국 평균(6.9%)은 물론 대구 평균(8.2%)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소규모상가의 경우 대구와 세종(10.9%), 전북(10.5%) 등이 전국 평균보다 공실률이 많이 높았던 지역"이라며 "소규모상가 임대료가 높아 신규 창업이 감소했고, 공실 해소도 더뎠다"고 진단했다.
이준호 동성로상점가상인회장은 "코로나19로 약 3년 동안 거리에 사람이 거의 안 다녔고, 동성로 중심가에 들어와 있던 의류 브랜드 대리점도 어느 순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더 저렴한 온라인을 이용하니 대리점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라며 "먹거리나 체험시설은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화장품 등 판매시설이 문제"라고 했다.
◆ 지형 변화에 여기저기 상권 확장
동성로 상권이 약화한 건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구조가 변하던 상황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영향이 컸다. 유동인구 감소는 의류·잡화 등 판매시설 위주로 경영난을 부추겼고, 이를 버티다 못한 상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교통망 변화와 택지 개발에 따른 신(新)상권들이 형성되면서 소비자가 분산된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동대구 상권은 2004년 KTX 동대구역 개통과 2016년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개점으로 급성장했다. 이 와중에 동성로에서는 높은 임대료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내몰림) 현상이 일어나 상인들이 종로, 삼덕동 등으로 흩어지는 양상이 발생했다.
송원배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이사는 "과거에는 대구가 중앙 집중형 도시여서 영화관이나 주요 브랜드 매장이 내에 몰려 있었지만 1990년대부터 곳곳에 택지지구가 개발되고 도시 외곽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면서 동네마다 상권이 생겼다. 시내를 대체할 수단이 많아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상인들은 동성로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기존 체제를 탈피, 문화·체험시설 중심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상권 특유의 볼거리를 살리기 위해 다시 노점상을 허용하고,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회장은 "'만남의 장소'인 동성로 28광장 야외무대를 재정비하면서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하니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사진을 찍는 등 확실히 효과가 있다. 매주 버스킹도 열린다"면서 "볼거리를 늘려 젊은 사람들이 와서 먹고, 놀고, 즐기는 명소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이 우선
중구청은 동성로 관광특구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 맵핑 프로젝터 등으로 중심 거리를 꾸미고 문화체육관광부로 관광특구 지정을 다시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2021년 관광특구 지정을 신청했지만 '최근 1년간 외국인 방문객 수 10만명 이상'이라는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했다.
관광특구에 선정되면 관광진흥개발기금 대여, 음식점 옥외 조리행위 허용 등 혜택이 주어진다. 중구청 관계자는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은 추후 대구시청사 후적지 개발과 맞물려 대구 관광 활성화와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성로 내 경제활동을 늘리기 위해 창업지원시설을 확충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동성로 청년창업복합공간' 조성이다. 이번 달 추가경정예산으로 사업비가 편성되면 조성 방안 연구용역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북성로 청년창업지원센터' 조성은 구청장 공약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청년 소상공인 사업공간인 '청년상생상가'와 문화·예술·관광 분야 창업자 사무공간 '청년오피스' 등을 갖춘다. 지난 2월 착공한 단계로, 연내 공사를 끝내고 내년 2~3분기 중에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구시는 2021년 동성로가 중소벤처기업부 지역특화발전특구 '글로벌 의료특구'로 지정된 이후 '대구 메디 페스타'를 개최하는 등 의료관광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대중교통전용지구의 경우 지정 이후 시민 만족도가 높게 나온 만큼 해제 여부를 논의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당시부터 반대하는 상인이 일부 있었다"면서 "보행자가 다니는 공간이기도 하니 어느 한쪽의 의견만 반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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