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한 기초자치단체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강제 할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름 그대로 주민이 참여하는 사업에 공무원이 동원되면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다.
11일 매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대구 A구청은 각 과에 이메일을 발송해 "각 부서별 20건씩 주민참여예산 사업 발굴 협조 부탁드린다"며 "부서별 발굴 건수를 파악하기 위해 24일까지 신청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A구청은 또 "제안한 사람 명의는 꼭 주민 중 공무원이 아닌 사람의 명의로 해야 한다"며 "가족이나 지인 중 주민이 계시면 그 명의로 등록하면 되고, 명의를 구할 수 없으면 신청인 정보를 비워두라"고 했다.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에 따르면 시와 구·군의 공무원은 주민참여예산제에서 정의하는 주민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A구청은 주민참여예산 아이디어를 공무원이 발굴토록 지시하고 조례 위반을 피하려 신청인을 주민으로 위장하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A구청 한 직원은 "우회적으로 공무원이 주민참여예산제에 동원되고 있다. 시비 확보를 위해 공무원에게 아이디어를 발굴하게 하는데, 부당한 업무지시이자 명의도용 소지도 있다"며 "이 과정에서 정작 주민이 제안한 사업은 검토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공무원이 제안한 사업이 우선시되고 있다. 다른 구청 또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문제는 A구청 내부 익명게시판에도 제기됐다. 여기에는 '매년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거나 '갑자기 주민으로 둔갑해 아이디어를 내려니 뭐가 떠오르지도 않는다'며 문제제기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구청 재정이 열악하니 어떻게든 예산을 아끼자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공무원과 산하기관의 주민참여예산 개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대구시설공단은 3년간 34억원 규모로 주민참여예산에 부당 개입하다 감사원에 적발됐다. 당시 감사원은 공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민참여예산 편성 과정에 개입하도록 지시한 공무원 3명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다. 지난 2020년에는 수성구청 공무원이 수성구의원에게 주민참여예산에 관한 문자메시지를 전송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감사원 지적이 있었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니 개탄스럽다.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며 "주민참여예산제에 공무원이 개입하는 것은 주민이 직접 참여, 제안, 심사, 결정하는 제도의 본질을 변질시키는 매우 나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구청 예산팀 관계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을 받아달라는 취지였고 강제성은 없었다"며 "내부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부서별 사업 발굴은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이상규 대구시 예산담당관은 "주민참여예산제가 팽창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대로 주의를 주거나 시정할 부분이 있으면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주민참여예산사업 규모는 2019년 150억원, 2020년 150억원, 2021년 180억원, 지난해 19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올해는 170억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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