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다시 시작된 의료봉사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바야흐로, 코로나 이전의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3년 전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뜨렸던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점차 사라져 가며, 우리들의 일상도 2019년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은 마스크 쓰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지만 말이다. 의료봉사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국경을 막으면서,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로 떠났던 해외 의료봉사도 멈추어 버렸다. 3년이 지나, 코로나19가 독감 정도의 수준으로 인식되면서, 전 세계적인 코로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 결과, 제약 없이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으며, 이제는 의료봉사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1월 말,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서 '구정 3박 4일의 연휴 기간에 캄보디아 의료봉사활동을 계획 중인데, 함께 할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캄보디아에 아이들도 많으니, 소아과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의료봉사를 가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던 터라,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3년 동안 의료봉사를 쉬었던 탓에 새롭게 준비물을 챙기고, 약품, 기구를 구입하고 팀원을 모으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나마 팀원은 쉽게 모집이 되었다.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치과 선생님, 약사 및 간호사, 미용사 그리고 여러 일들을 도와줄 청년들, 대학생들. 대략 20명의 인원으로 팀이 구성되었다.

다음으로 어려운 점은 '얼마나 많은 환자들, 아이들이 올지?' 그리고 '어떤 질병으로 올지?'에 대한 문제였다. 환자 수와 질병 군을 알아야 그에 맞추어 약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일을 책임져주는 분들과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대략의 환자 수와 흔한 질병을 정하고 필요한 약들을 준비하였다.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10박스가 넘었다. 매주 모임을 가지면서, 캄보디아에 대해 공부도 하고, 현지의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 그리고 필요한 음식들을 각자의 짐 가방에 채우기 시작하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구정이 시작되는 당일. 행여 길이 막힐까 봐 새벽 3시에 모여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캄보디아 깜뽕톰이었는데, 대구에서 출발해서 그곳까지 꼬박 10시간가량이 걸렸다. 온종일 움직여 피곤했지만, 내일 진료를 위해 진료실, 약국, 그리고 환자들의 동선을 짜는 것을 미룰 수는 없었다. 드디어 진료 시작. 캄보디아는 이전 20년 동안 연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였다. 소아과에 온 아이들의 병은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대체로 비슷했다. 감기, 폐렴, 장염 등의 전염성 질환이 대부분이었다. 서투른 캄보디아어 인사에 해맑게 웃는 아이들, 죽어라 우는 아이들. 아무 말이 없는 아이들. 그리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모두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왕창 가져갔던 뽀로로 비타민을 받고 싶어, 아픈 곳이 없지만 나에게 온 아이들까지.

한 공간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현지인 봉사자들의 영어와 캄보디아어, 한국어가 엉키면서 흡사 시장 바닥과 같았다. 그러나,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였다. 그중에서, 약국에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아무리 많은 인력이 함께해도, 일단은 언어의 장벽이 너무 컸다. 복용법을 캄보디아어로 설명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가져간 소아용 시급제들이 동이 나서, 밤늦게까지 알약을 가루약으로 갈아야 했다. 정신없이 지냈던 3박 4일의 일정이 끝이 났다. 의료봉사 기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다른 팀원들의 한국 일정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단기 의료 봉사를 다녀오면 늘 아쉬운 마음뿐이다. '어떤 약들은, 또 어떤 물건들은 더 챙겨갔어야 했는데, 더 많은 시간을 나누었어야 했는데',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났어야 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등등……. 그리고, '나의 일련의 일들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라는 근원적인 고민까지.

단기적의 의료봉사가 아닌, 캄보디아 지역에 병원을 지어서, 그 병원을 통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제적이고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우리 팀들이 가지고 있는 최종 목표이다. 그러한 날들을 위해, 지금은 작고 작은 의료봉사들을 겹겹이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게 있는 작은 재능을 남들을 위해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늘 고맙고 감사하다.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진다'라는 사실이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새록새록 가슴에 새겨진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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