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퇴계가 골짜기로 간 까닭은

배성훈 경북본사장
배성훈 경북본사장

1569년(선조 3년) 3월 4일. 69세의 퇴계가 임금과 조정 신료들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 도산으로 내려온 날이다. 몇 달에 걸쳐 사직 상소를 올린 끝에 겨우 윤허를 받아냈다. '퇴계'(退溪)라는 호가 '나의 고향 시냇가로 물러나겠다'는 의미인 만큼 퇴계는 벼슬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의 생애는 임금의 부름과 물러남의 연속이었으나 이날이 그의 마지막 물러남이 되었다.

퇴계는 왜 한양을 버리고 700리 머나먼 골짜기 안동으로 돌아갔을까? 퇴계는 일찌감치 인재들의 중앙 집중을 우려했다. 조선의 많은 유생들이 성균관, 향교 등 관학으로 집중되는 현상과 남을 비방하여 자리를 유지하는 당시 선비들의 세태를 한탄했다. 퇴계는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소망했고, 그 소망을 위해서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퇴계는 안동에 내려와 도산서당을 만들었다. 퇴계는 종가 문화를 통한 안채 교육(격대교육, 효와 예절)과 사랑채 교육(권학) 등으로 한양을 능가하는 지방의 교육 혁신을 이끌었다. 또 퇴계는 강남 농법(3모작)을 연구해 영남지방에 맞게 개발했다. 논 하나 없던 산이 논으로 변하며 인구가 늘어났고 지역 경제가 번영하기 시작했다. 퇴계는 16세기 서원운동을 통해 한양으로 쏠리던 국가의 자원과 인재를 지방으로 되돌려 놓으면서 지방시대 혁명을 완수한 위대한 스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 소멸, 인구 절벽 위기 등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국가균형발전 계획이 시행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수도권 비대화, 지방 황폐화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일로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3%가 몰려 있고 100대 대기업 본사의 91%, 상위 20개 대학의 80%, 의료기관의 52%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방 인구가 줄어들면 머지않은 미래에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북도는 '지방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을 퇴계 정신에서 발견했다. 경북도는 퇴계 정신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와 맞닿아 있다고 보고 이를 실천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서울 쏠림과 지방 소멸의 악순환을 끊어 내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역 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선정을 통해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지역 교육 혁명, 일자리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지역 특화형 비자 및 광역비자 제도를 통한 지방 주도형 외국인 정책, 사회 통합을 통한 외국인 공동체 구현 등 지방시대 대전환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제4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개막식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기창 안동시장, 구윤철 경북문화재단 대표 등 내빈들이 사정전 일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지난 3월 27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제4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개막식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기창 안동시장, 구윤철 경북문화재단 대표 등 내빈들이 사정전 일원에서 출발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9일 안동 도산서원에서
9일 안동 도산서원에서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마지막 걷기 일정이 끝났다. 경북도 제공

454년이 지난 2023년 3월 27일, 초중고생이 포함된 45명의 재현단은 퇴계 이황의 마지막 귀향길을 걸었다. 서울 경복궁에서 출발해 14일간 퇴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안동 도산서원까지 5개 시도, 17개 시군구를 걸으며 퇴계 선생의 참뜻을 되새겼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기창 안동시장, 구윤철 경북문화재단 대표도 직접 퇴계의 귀향길에 함께했다. 퇴계의 귀향길은 물러남의 길이면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다. 지금 경북에는 서원운동으로 지방시대 방향을 제시한 퇴계의 가르침이 되살아나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제2의 퇴계 혁명 정신이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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