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던 부채에서 선면을 떼어내 화첩으로 보존돼 온 '소의문망도성도'다. 그림에는 제목, 서명, 인장 등이 하나도 없고 그림 바깥에 강세황, 김희성, 김윤겸 등의 글이 있다. 세 분 모두 겸재 정선의 그림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모두 화가여서 정선의 필치를 잘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이 화첩의 소장자인 김희성이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고 정선과 만년까지 교류해 작품의 유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 강세황의 글은 이렇다.
'종소의문외(從昭義門外) 망도성(望都城) 내여차(乃如此) 성지궁궐(城池宮闕) 역력가지(歷歷可指) 차옹진경도(此翁眞景圖) 당추위제일(當推爲第一) 표암(豹菴)'
'소의문(서소문) 밖에서 도성을 바라보면 곧 이와 같다. 성지와 궁궐을 또렷하게 가리킬 수 있다. 이 옹(정선)의 진경도(眞景圖)를 마땅히 첫째로 꼽아야 한다. 표암(강세황)'
강세황은 서울의 전모가 이렇게 보이는 지점은 서소문 밖이라고 지목하며 진경도는 정선이 최고라고 했다. 오른쪽 아래 글에서 김희성은 중국 당나라 왕유의 유명한 시구를 인용하며 겸재가 한양도성을 그렸다고 했고, 김윤겸은 중국의 고대 명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다고 극찬한 글을 왼쪽에 써 넣었다.
이들은 모두 실경산수를 그려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한양을 이렇게 부채그림으로 담아낸 '소의문망도성도'가 얼마나 놀라운 작품인지 잘 알았다. 서울지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한양도성 안팎을 회화적으로 구성해 실경산수로 그린 한양전도(漢陽全圖)는 정선의 '소의문망도성도'가 처음이다.
운연(雲煙)으로 공간을 압축했고 푸른 선염을 올린 산줄기와 봉우리로 한양을 둘러싼 산세를 나타내며 언덕과 구릉에 의지해 집들과 나무들을 그렸다. 점점이 이어지는 도성의 성곽과 뚜렷한 문루(門樓), 기와지붕이 연이어진 건물군 등이 어디인지를 당시 사람들은 하나하나 짚을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성부는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이 사는 궁궐과 종묘사직, 고위 관료들이 근무하는 중앙관청은 물론 수많은 인가가 들어찬 대도시였다. 뭇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산수자연이 아니라 수만의 지붕이 빼곡히 들어찬 한양성은 장삼이사가 모여 사는 도시가 일상이자 이상향이 된 시대인 18세기를 말해주는 것 같다.
금강전도 못지않은 요약력으로 한 컷에 담아낸 한양도성이다. 이 화첩을 펼쳐 본 세 분은 금강전도에 버금가는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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