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의 전성기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대구경북에서 씨름의 부활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씨름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할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된 스포츠다. 1980, 90년대에는 씨름 경기 시청률이 30%를 넘을 정도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강호동이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를 꺾고 천하장사를 차지한 일화는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이야기가 아직도 곱씹어진다는 것은 이후로 씨름판에 새로운 이슈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형스타 부재와 빠르게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씨름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나갔다,
'영광의 시절'이 까마득한 지금, 여전히 씨름의 대중화를 고민하는 이가 있다. 바로 영남대 씨름부를 이끄는 허용 감독이다. 그는 "대구경북에 '씨름 문화관'을 설립해, 씨름이 시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씨름이 중국 거?…씨름 문화관 설립하자"
허 감독은 2011년부터 지역의 '씨름 명가' 영남대 팀을 이끌고 있다. 영남대 씨름부가 승승장구를 달리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씨름의 위기'에 대해 고민해온 인물이다.
허 감독은 "씨름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이자 무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도 잊혀가는 게 현실"이라며 "태권도가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씨름이 빠른 속도로 쇠락하는 데는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허 감독은 "씨름이 국민들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씨름인데, 일반인들이 체험하고 즐길 공간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씨름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먼저 한국인들이 쉽게 접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우수성을 알리는 게 맞다. 그것이 내가 씨름 문화원 설립을 주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허 감독은 현재 의료관광 전문업체인 케이드림의 김종운 대표와 함께 씨름 문화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01년 영남대 씨름부에서 선후배 관계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로 다시 뭉친 것은 씨름인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2007년 유학을 하던 당시 중국에서 조선족 씨름 대회가 열린 것을 보았다. 중국 전통 씨름대회라는 명칭과 함께 참가자들이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불렀다"며 "심지어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 검색해봐도 씨름을 중국 전통무예로 소개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사랑해온 운동이 왜 중국 것이 돼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귀국 후 보니 포항에는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이 있더라. 그런데 유네스코 등록된 씨름은 이를 기록하고 전승할 단 하나의 문화관도 없다"라며 "그래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허용 선배와 뜻을 모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좌초된 씨름 마을…"국민적 공감대 필요"
국내에 씨름 문화관을 세우고자 하는 시도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3년 대한씨름협회는 '씨름 마을'이라는 명칭으로 같은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당시 건립추진위원회도 출범했고 종합발전계획, 조감도를 포함한 구체적인 계획이 모두 나왔었다. 씨름전용구장을 비롯한 학교와 박물관 등을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씨름 마을 유치에 적극적인 지자체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부지 선정도, 예산 확보도 이뤄지지 못한 채였다.
당시의 실패 옆에서 지켜본 허 감독은 "사업이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엔 국민들에게 우리 씨름의 문화적 가치와 경기적 가치, 그리고 놀이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분위기 형성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씨름 문화관 설립이 현 정부의 기조와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 중 하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초 "2023년을 K-씨름 부활의 원년으로 삼을 것"을 공표하며 ▷전통의 현대적 해석 ▷대회 혁신 ▷씨름의 보편화를 씨름 부흥의 3대 방향으로 정했다. 씨름을 국내 스포츠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전통 씨름의 보다 정확한 재현과 체험행사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나아가 씨름을 보조금에 의존하는 스포츠에서 자생력을 갖춘 스포츠로, 미디어의 관심과 조명을 받는 스포츠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울러 다양한 예능으로 대중적인 관심이 조금은 생겼다는 점도 힘이 된다. 스포츠 예능이 인기를 얻으며 예능화된 씨름이 TV에 다시 노출되기도 했다. KBS '태백에서 금강까지-씨름의 희열', 채널A '천하제일장사'가 대표적이다.
허 감독은 앞으로 대구경북에서 씨름의 역사가 깊은 고장을 다니며 씨름 문화관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할 계획이다.
그는 "필요하다면 지자체의 문을 계속 두드릴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면 같이 나서서 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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