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저희 육남매 곁을 떠나신 아버님께 편지로 마음을 전해 봅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봄꽃들이 막 피기 시작했는데, 또 아버지를 괴롭혔던 코로나19도 이제는 거의 끝나가 건강만 조금 더 좋아지시면 꽃구경 같이 가자고 했는데, 하필 봄꽃 흐드러질 때 떠나가셨네요. 같이 꽃놀이 못 가서 마음이 아프지만, 봄꽃 따스하게 필 때 떠나시고, 하늘 가신 그 길이 꽃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처음 출근하는 날, 아버지가 입원해 계셨던 요양병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왠지 저 안을 들어가면 아버지가 계실 것만 같은데 이제는 다시 못 본다 생각하니 마음 한 곳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입니다. 새벽에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달려가서 방호복 갈아입고 병실로 들어갔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아버지의 임종을 제대로 못 보고 보내드려 자식으로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면사무소 앞 은행나무 밑에서 공기놀이를 하며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곤 했던 어린시절의 은이... 환하게 웃으시며 "은아 집에 갈까?" 손을 꼭 잡아 주시면 달랑달랑 아버지 따라 집으로 오곤 했지요.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거창에서 공무원으로 살아오셨던 아버지. 저 어릴 적부터 공무원이 될 때까지, 신원면에서 오랫동안 면장을 하셨었죠. 때로는 '면장 딸'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그 이름이 제가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참 성실하셨어요. 정말 고향 신원면을 위해 헌신하셨어요. 신원면은 당시에 천수답이 많았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가 늦어질까,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나 가파른 논밭들이 유실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셨어요. 그때는 다들 대부분 모질게 가난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가정들을 방문하고 돌아오시는 날들엔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밤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시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 아버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공무원을 내심 꿈꾸었나 봐요. 저도 아버지를 따라 공무원으로 살고 있네요. 아버지의 공직자로서의 삶, 그 길의 절반이라도 닮고 싶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저희 육남매와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재미있었던 게 어머니와 오빠, 언니들이 생각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다 제각각이었다는 거예요. 저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상한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어머니가 "갓 시집 와서 모든 게 낯설 때 너희 아버지가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 시집들을 사서 둘이 있을 때마다 읽어 주곤 했다"고 하실 때 아버지의 로맨틱한 모습을 발견했지요.
엄마는 진달래꽃 시를 지금도 외우시더라고요. 그런데 오빠와 언니들은 "아버지한테서 귀여움은 너와 막내가 다 받았다"며 아버지가 '엄했던 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해 추석인가 오빠들이 고등학교가 있던 진주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넘게 걸려 거창 집으로 왔더니 "공부 안 하고 왜 왔느냐"며 쫓아내셨다죠?
그래서 오빠들은 달밤에 짚단 더미 아래서 이슬 맞으며 자고 갔다고 해요. 어찌 보면 아버지가 자식들 잘 되라고, 교육 잘 받아서 잘 살라고 했던 그 마음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장례식 끝나고 나서 부의금 일부를 장학금으로 군에 기부했어요. 아버지가 보여주신 자식 교육에 대한 열의를 조금이나마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육남매가 상의했답니다. 아버지께서도 마음 뿌듯해하셨으면 해요.
요양병원에 들어가시면서도 어머니 걱정 많이 하셨죠? 그 때문에 없던 대문을 새로 만드셨잖아요. 홀로 남을 어머니 걱정하시면서 말이죠. 어머니는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잘 보살필게요. 아버님, 하늘나라 그곳에서도 우리 육남매 가정 지켜보시면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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