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해저도시 타코야키

김청귤 지음/래빗홀 펴냄

영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양자경이 등장한 장면. 네이버 영화
김청귤 지음/래빗홀 펴냄
김청귤 지음/래빗홀 펴냄

'그 한 줌의 시간마저 소중히 할 거야'

엄마에게 자신의 동성애를 인정받지 못한 딸 '조이'는 매일 엄마와 조금씩 멀어진다. 둘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데, 결국 엄마가 먼저 조이에게 손을 내민다. 딸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엄마는 집을 떠나려는 딸에게 "난 너와 여기 있고 싶다"고 말을 건넨다. 상처가 큰 탓일까. 딸의 마음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그래 봤자 상식이 통하는 것도 한 줌의 시간뿐이라는 딸. 그런 그에게 엄마는 순간마저 사랑하고 소중히 할 거라는 진심을 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어지는 둘의 포옹.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 수상을 하며 다시 흥행을 일으키고 있는 배우 양자경의 주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명장면이다.

남편과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엄마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는데, 그런 도중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 가지 모습의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발견하고 그 모든 에블린에게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지령을 받게 된다.

결국 에블린은 세상과 가족을 구한다. 다양한 삶을 경험한 에블린은 그가 현재 속한 우주의 다소 힘든 삶,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다. 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것. 결국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청귤 작가의 연작소설 '해저도시 타코야키'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동안 내내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이 겹쳤다. 내용이 똑같아서가 아니라 파국으로 향하는 삶에서도 '사랑'이 서로를 지켜준다는 모습 때문이다.

책 이름마저 신선하다. 판타지 소설인데 기후 변화로 인해 육지가 모두 바다로 덮인 지구에서 생존을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간 인류의 이야기를 여섯 편의 연작으로 담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빙하가 녹아 땅이 바다로 뒤덮이고 먹을 것마저 부족해진 미래다. 단편들은 차례로 시기적 순서에 따라 배치됐다. 맨 앞에 있는 '불가사리'는 식량난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시기, 그 다음 '바다와 함께 춤을', '파라다이스'에서는 배 위에서 생활하며 떠도는 인간과 물속에 적응한 신인류가 등장한다. 이후 '해저도시 배달부'와 '해저도시 타코야끼'에서는 인간이 해저도시를 건설해 파편적으로 생존하다 마침내 '산호트리'에서 물속의 신인류만이 남아 세계의 회복을 희원하는 시절이 그려진다.

이 과정을 통해 김 작가는 전염병이 돌고 각박해진 세상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우애를 나누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딸을 낳고 병을 낫게 해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두 명의 어머니, 무참한 폭력을 견디며 서로를 살리기 위해 물거품이 되길 선택하는 소녀들 등 어려운 관계와 세상 속에서 주고받는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발 디딜 곳 없는 곳에서 사랑으로 끝까지 서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회복의 과정을 그리는 셈이다.

현실의 기후변화와 함께 기후 소설이 큰 주목을 받는 시기다. 이미 많은 기후 소설은 물질적 풍요가 불러온 재난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엄중함을 경고하지만 김 작가는 '해피엔딩'을 그린다는 면에서 해저도시 타코야끼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것도 생명이잖아요. 그것도 무척이나…그래요, 사랑스러운"

어려운 시기에 사랑타령이라니. 대책없는 낙관처럼 보여질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가치있는 하루를 고민하고 사랑할 용기를 내는 인물들, 연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강한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회복된 지구와 새로운 가능성은 끝내 열린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해저도시 타코야끼'를 통해 한 가지 결심이 섰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것. 27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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