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터져나올 때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수년간 제게 치료를 받아오던 여자 환자께서, "원장님 한번 안아도 되나요?" 하시는 겁니다. 몸이 아픈 줄 알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정신과에 가보라는 제안을 받고 수년 째 저를 만나오고 있는 분입니다. 성당에서 기도드리는 것과 정신과 치료를 선택한 것이 자신을 지켜준 버팀목이라고 말하는 분입니다.

그 분이 저를 꼭 안으시더니 "원장님이 이런 큰 어려움을 겪은지 몰랐어요. 원장님이 신문에 쓴 글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지긋이 제 편이 되어 온기를 전해주는 그 분의 위로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 분이 진료실을 나가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내가 왜 이러지. 누군가 제게 안겨준 위로의 한마디에 이토록 무너진 걸 보니 저도 꾹꾹 참으면서 버텨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또 어느 누구도 제게 힘드냐고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 눈에는 힘들어 보이는 게 없었는지도 모르고, 정신과 의사이니 스트레스 없이 살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정신과의사에게 위로를 건네는 그 분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마음의 안정감을 찾아서, 이제 자기를 치료해준 의사의 마음을 돌봐주는 단계까지 도달했으니 참 과분하고 고마웠습니다.

진료실에서 상담 중에 갑자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흘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별로 힘든 일도 없는데... 선생님 너무 죄송해요.". 이런 분들은 오랜 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와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달픈 시집살이를 수년간 해왔거나, 남편의 거친 말투에 말대꾸 한번 못하고 살아왔거나, 독박 육아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다른 형제의 짐까지 혼자 짊어지고 살아온 분들도 있습니다. 맏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혹은 죄책감 때문에, 이게 아닌 걸 알지만 모질게 내치지 못해서 지금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마음들이 숨어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하면 이해는커녕 그게 뭐가 힘들었느냐, 대한민국 여자들 다 그렇게 산다, 네 성격이 이상하다는 등 비난받기가 일쑤였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살얼음이 꺼지듯,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이 강물처럼 터져버린 것입니다.

누구도 안아주지 못했던 그 마음, 비난받지 않고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비로소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는 그동안 무거웠던 마음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실컷 우셔도 됩니다. 그제야 밑바닥에 무엇이 있었는지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많은 눈물에 잠겨있었던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될테니까요.

슬픔에 빠진 뇌는 더 강력한 슬픔을 경험하게 되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자극되어서, 슬플 때 펑펑 울거나 슬픈 음악을 듣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질 수 있습니다. 슬픈 시나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 우리의 뇌는 거울 신경세포가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슬픔은 눈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끝난 일들이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이 사과만 한다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이라고 집착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수년전 남편이 바람피운 사건에 매여서 오늘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화가 나서 남편을 두들겨 패고 싶다면 여전히 고통은 진행형입니다.

삶이 얼마나 힘들까요. 아직도 지금 일어난 일인 줄 착각하는 뇌에게 자주 말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상처는 지나간 일이라고.남들은 모두 즐겁고 순탄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고단하고 풀리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더 힘들 수 있습니다.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행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점점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남의 삶을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사회는 마음을 더욱 걸어 잠그게 합니다. 타인에게로 향한 조바심이나 남의 반응을 수신하는 안테나를 잠시 꺼두시고 내 마음의 슬픔에 귀기울여보아도 됩니다. 정말 그동안 수고 많으셨으니까요.

우리의 마음은 무한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음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해있을 때, 뱃머리만 보일 뿐 바닷 속에 잠긴 부분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모르는 부분이 90% 이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로서 20여 년간 계속 환자를 만나오면서 귀에 들리는 말을 이해하면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도 들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신뢰감 있는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정신 건강에 아주 중요합니다. 답답하고 공기가 탁한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시키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신의학은 몸과 마음의 교차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라 신체와 정신은 하나입니다. 사람의 건강에 대해 알려면 신체뿐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이전 경험, 정신건강 등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여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건강은 신체 건강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 같은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제 많이 힘들면, 병원 문에 <휴진> 이라고 붙여두고 마음을 내려놓으러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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