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이후 수입 소고기 시장 개방에 속도가 붙으면 한우 가격과 농가 소득이 급락할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농가들은 최근 수년 새 이뤄진 '한우 시장 왜곡'에 속아 송아지에 과투자했다가 불경기를 맞닥뜨리는 바람에 투자금 회수는커녕 적자만 떠안게 생겼다.
하루빨리 왜곡의 환상을 떨치고 사육 규모 축소, 사육비 절감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우코인'에 휩쓸렸다가 불경기, 수입시장 개방 직면"
19일 경북 예천에서 한우 100여 마리를 기르는 축산농민 A씨는 "그야말로 '한우코인'에 휩쓸린 자신이 한심스럽다"고 한탄했다.
A씨는 "2년 전 소값이 높을 땐 담보능력이 좋으니 대출도 받고, 출하 대상이 된 30개월령 소 판매 수익도 모아 축사를 증축했다. 이곳에는 번식우를 늘려 낳은 송아지와 새로 입식(사서 기르는 것)한 놈들을 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입 소고기 시장 개방 예정은 알았지만 비쌀 때 바짝 팔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번 같은 불경기까지 미리 닥칠 줄은 몰랐다"며 "소값은 대거 내렸는데 사료값은 올랐고 고금리 탓에 대출 상환 부담도 크다. 수입 소고기 시장마저 열리면 투자한 걸 회수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탄식했다.
다른 축산농민 B씨는 "지난해 우시장 송아지 평균단가가 250만 원에, 우량 송아지는 300만 원밖에 하지 않길래 5마리 샀다"며 "최근 소 한 마리를 30개월령까지 기르는 사료값이 1마리 당 270만~300만 원으로 100만 원가량 뛴 반면, 과거 1㎏ 3만 원하던 소 판매가격은 최근 2만3천 원 안팎으로 크게 내렸다. 28개월령 암소 한 마리당 180만 원씩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우농은 2년 뒤를 내다보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괜한 짓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영향, 소값 사이클 들쭉날쭉
경북 축산업계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받은 시민들이 평소 즐기기 어렵던 '한우 외식'을 선호하면서 2021년까지 소, 송아지값이 급등했다.
이후 2년 만인 최근 소, 송아지값이 제 사이클을 찾았다. 높은 물가 영향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져 외식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다.
통계청 집계 전국 한우 산지시세를 보면 큰소(600㎏) 암놈이 2021년 6월 650만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달 470만 원으로, 같은 기간 수놈 거세우는 861만 원에서 654만 원으로 각각 대폭 내렸다.
같은 기간 6~7개월령 송아지값(암놈 384만→218만 원, 수놈 500만→319만 원)도 정점에서 대폭 내렸다가 최근 반등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 같은 시장 왜곡기 축산 농가들이 저마다 송아지를 입식(사서 기름)하거나 대거 번식하고, 축사도 증축했던 탓에 이제 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농가들은 소값이 크게 올랐을 때는 더 많은 소를 길러 비싸게 팔려는 기대로, 소와 송아지가 쌀 때는 구입비용 대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기대로 각각 사육 두수를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도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한우 사육 두수는 2021년 3월 전국 320만4천마리, 경북 70만6천마리에서 지난해 12월 전국 352만8천마리, 경북 77만9천마리로 늘었다.
왜곡이 끝난 현재 송아지 값이 내리자 일부 농민은 다시금 미래 소값 상승을 기대하며 추가 입식을 고려하는 모습이다. 몇몇 농가에선 대기업 축산업체 요청에 송아지를 위탁 생산하는 등 농장 규모를 키우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 시장 개방, 한우값 하락 압박↑…"사육 줄일 때"
최근 들인 송아지를 도축기(30개월령)까지 2년가량 기르는 동안 수입 소고기 시장도 열린다. 이후 농가 어려움은 더욱 극대화할 전망이다.
소고기 수입 관세는 미국산 2026년, 호주산 2028년 각각 완전 폐지된다. 한·메르코수르 FTA도 양측이 지난 2021년 9월까지 일곱 차례 협상하는 등 타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메르코수르는 라틴아메리카 최대 경제연합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를 포함한다.
미국과 호주, 메르코수르는 모두 소고기 생산량에서 세계 상위권에 있는 만큼 향후 국내 수입 소고기 점유율이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물량이 늘면 더 싼 소고기를 찾는 소비자 요구에 한우 가격 하락 압박도 커질 전망이다. 송아지 가격 폭락, 한우 번식 기반 악화에 이르면 한우농가 경영난도 불 보듯 뻔하다.
경북도 관계자는 "당장의 송아지와 소 시장 가격을 볼 것이 아니라 다가올 소고기값 변동에 미리 대응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농가들은 암소 사육 두수를 관리해 번식우를 줄이고 미리 도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가 배합사료 도입해 사육비 30% 절감" 자구책 마련도
일부 농민은 소 사육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료값이라도 줄이고자 자가배합사료를 도입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예천에서 대규모 축산농사를 하는 우병국 경북한우협회 부회장은 최근 주변 축산농들과 공동출자해 '자가 섬유질배합사료'(TMR) 배합기계를 마련하고서 가동을 앞뒀다.
현재 소 사육비 가운데 공장에서 사는 곡물 사료값이 과반(60%)을 차지한다. 이어 농촌의 건초·볏짚을 먹이는 조사료(30%), 면역증강제 등 보조약품(10%) 등 순이다.
저렴한 주정박, 맥주박 등 농식품 부산물을 사서 직접 TMR을 만들면 사료공장에서 사 먹일 때보다 비용을 30%가량 절감할 수 있다.
우 부회장은 예천군 축산과에 "지역 농가에 TMR 기술을 확대 보급하자"고 건의한 상태다. 이후 국내 전역에 전파해 농가소득을 올리려는 목표다.
우 부회장은 "출자농들이 기르는 송아지 1천200두 분 사료를 사지 않고 자가배합해 먹이면 사료값을 30%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 한우 가격이 국내 판매하는 수입 소고기보다 30%가량 비싸니, 사료값만 아껴도 맛으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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