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준표형, 왜 그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국민의힘이 홍준표 대구시장을 당 상임고문에서 해촉했다. 홍 시장은 "문제 당사자 징계는 안 하고 나를 징계한다?"고 공박했다. 불현듯 옛일이 떠오른다.

SBS '모래시계'가 종방된 직후 나는 '월간조선' 1995년 4월호에 "'토사구박'(兎死狗縛)된 홍준표 검사의 대반격, 박철언-홍성애의 진실은 이것이다"란 기사를 실었다. 그가 인터뷰에 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슬롯머신 수사로 그는 '한국의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로 불렸지만, 그 뒤론 수사에서 배제돼 있었다. 그래서 '토사구박'이란 말을 만들어 붙여 주었다. 또 한 번 홍준표 신드롬이 일었다. 고려대는 그를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 선정하고 그를 모델로 한 전면광고를 냈다.

홍 검사가 송지나 작가와 저녁을 하자고 했다. 준표형이 싱글거리며 풀기 시작하는 입담은 구수하거나 아니면 코믹하다. 그날은 해학이 작동했다.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고 웃겨대는 바람에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헤어질 때 송 작가는 그에게 모래시계 비디오테이프를 선물했다. 이 기억을 소환한 것은 19대 대선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뒤 자유한국당은 지리멸렬했다. 반기문을 시작으로 옹립하는 이마다 허물어졌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화제였다. 채널A에서 시사 논평을 하던 나는 그를 '홍트럼프'로 규정하고, 자유한국당의 대안으로 예견했다. 자유한국당이 마지막으로 그를 잡았다. 예상대로 그는 필살의 개인기를 펼쳤다. "우우우 우~"의 모래시계 주제곡은 그의 신비감을 높이는 아우라가 됐다.

대선이 임박했을 때 송 씨가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그분은 제가 모래시계를 집필할 때 취재차 만났던 여러 검사 중에 한 분일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의 '마이웨이', 더불어민주당의 '돼지 발정제'에 이은 또 하나의 악재란 느낌이 들었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로 자유한국당 대표를 내놓은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 문재인 정권 때문에 대한민국은 좌경화하는데, 국민들이 아차 할 때 돌아오겠다"고 했다. 14대 대선에서 YS에 패하자 '정계 은퇴'를 밝히고 영국으로 떠났던 DJ가 IMF 위기 때 정치 전면에 나서 대통령이 된 일이 떠올랐다.

그는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그리고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구 수성을에서 당선됐다. 대통령에 나섰던 이가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20대 대선이 다가오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부상했다. 국민의힘 경선은 그와 윤의 대결로 압축됐기에 18년 만에 그와의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는 생존하고 이기는 데 뛰어나지, 품는 데 능한 이가 아니다. 검사라면 그래도 되지만, 천하를 잡으려면 거느리고 알아줘야 한다. 대권은 개인기가 아니라 '맞춰 줬던' 그들이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5선에 경남 도백을 한 그에게 대구 시정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구의 그'는 좌견천리(坐見千里)하듯 적확한 논평을 날렸다. 그 사이 스무 살 젊은 한동훈 장관도 야당과 싸우며 스타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홍 시장을 총리로 삼으면 한 장관과 최강의 컬래버레이션을 이룰 것으로 봤다.

2021년 김재원 전 의원이 MBC 라디오에서 "홍감탱이 홍준표, 좀 세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한 김 전 의원이 전광훈 목사 행사에서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고 하자, 그는 "벌구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때마침 중앙 언론이 그를 불렀다. MBC 100분 토론에서 그가 유시민과 대담한 것은 그가 광주 정신에 버럭한 것과 더불어 보수파를 찜찜하게 했다.

CBS 라디오와의 생방송 통화에서 사회자가 한 장관의 총선 출마를 거듭해서 묻자, 그는 "말을 그래 하면 안 된다"고 화를 내고 "전화 끊자. 말을 이상하게 돌려서 아침부터 이렇게 하냐"며 끊어 버렸다. 국민의힘 상임고문에서 해촉됐을 때도 역정을 냈다.

대권에 근접했던 김종필은 "정치는 허업(虛業)", 이한동은 "그래도 중업(重業)"이라고 했다. 홍 시장에게 정치는 무엇일까. 나훈아는 테스형을 불러 세상을 물었지만, 나는 홍 시장에게 묻고 싶다. "준표형, 왜 그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