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미술 시간 준비물인 도화지 한 장 살 수 없었던 소년이 있었다. '크면 꼭 내 돈으로 물감을 사서 넓은 캔버스에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리라'고 꿈꿨던 어린 마음이었다.
20대 후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문득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걸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 쫓겨 잊고 살았던 그림에 대한 열망이 다시 솟아나는 순간이었다. 곧장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던 최환영 작가의 화실을 찾아 그를 은사로 모시고 그림을 배웠다.
이수동(53) 작가는 그렇게 그림에 깊이 빠져, 하던 일도 그만 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흔히 말하는 '미술 전공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는 "미술대학의 커리큘럼을 거부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대 교육은 틀에 갇힌 작업들을 배우는 것이기에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제한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주입식 교육 대신 자유를 택했고, 나만의 작업 방식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죠."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전업작가로 매일 밤낮으로 그림은 그렸지만, 미대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대학 강의나 미술 교육은 할 수 없었다.
물감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막노동과 택배 상하차, 가스 배달 등에 뛰어들었다.
그의 생계형 작업은 30년 가까이 살았던 대구에서는 물론, 5년 전 작업실을 마련한 고향 성주에까지 이어졌다. 그는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직접 트럭을 끌고 편의점 납품 일에 나선다.
무거운 짐들을 싣고 곳곳을 누비다 오후 2시에 퇴근하면 그때부터 화가 이수동의 삶이 시작된다. 그는 "밤 10시까지 그림 그리는 건 기본이고, 전시회 등으로 바쁘면 하루 2~3시간만 잘 때도 있다. 고통스럽지만 작업하는 게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체력관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짬을 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시력이 나빠지거나 손이 떨릴까봐 술도 끊었다. 오랫동안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 체력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주요 작품 소재는 코끼리다. 그림 속 코끼리는 마치 나를 지켜주듯 듬직한 자태로 정면을 응시한다. 코끼리 외에도 청도, 김천, 팔공산 등지를 다니며 직접 찍은 풍경 사진을 캔버스에 옮긴다.
5남매 중 막내로 유난히 어머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작가는 어머니와의 어릴적 기억이 창작의 원천이 됐다.
"어머니는 어릴적 공부하라는 말 대신 '쑥 캐러가자', '꽃 보러가자'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나를 자연으로 이끌며 키우신 덕분에 풍경을 그리고, 모성애나 가족애가 뛰어난 코끼리를 소재로 한 그림도 많이 그린 것 같아요. 살아오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어릴적 좋은 기억이 결국 작업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작업도 한다.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에서다.
그는 앞으로 구상 위주였던 지금까지의 작업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시도할 계획이다. 그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고 중요한 부분만 뽑아내 작업을 단순화하겠다는 것.
이 작가는 "작품은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만 고집할 수 없고, 기존의 틀을 깨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솔직히 그림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지만, 이제는 기쁨도 슬픔도 모두 바다처럼 받아들이고 작품으로 표현해내자는 마음이 앞선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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