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데생-선 긋기의 의미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중간고사 기간이다. 1학기도 반이나 지났다. 무엇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지난 몇 주간의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중간시험을 통해 알게 되는 지금부터 한 학기가 후다닥 끝나버린다. 얼마 전 나는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데생에서 무엇을 공부했는가를 물었다. 아무 말이 없길래 다시 데생 시작할 때 선 긋기를 왜 하느냐고 질문했다. 질문을 하지 않고, 또 답하지 않는 게 요즘 대학생들의 격식이다. 사실 나는 형태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에서 색보다 형태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 회에 이어서 이번에도 데생, 그중에서 선 긋기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중학교 미술부 시절에 나는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곳은 미술대학 입학을 위해 주로 고등학생이 다니는 입시 전문 미술학원이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고등학교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중학생은 고등학생과 공동의 미술부실을 사용했다. 미술부에서 처음으로 고등학생의 그림을 접한 뒤 내 안에서 무언가가 확실히 달라졌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거리에서 무작정 찾아간 그곳에서 겨울방학도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매일같이 석고데생과 정물 수채화를 공부했다. 그때 그린 그림이 방대한 양이 되지 않을까.

학원의 첫 수업은 선 긋기였다. 4절지 켄트지가 새까맣게 될 때까지를 몇 장이고 반복했다. 먼저 가로로 가지런하고 촘촘하게 직선을 줄기차게 긋다가 같은 방식으로 세로로, 사선 방향으로 선 긋기를 했다. 되도록 화면 가득 차는 긴 직선을 끊어지지 않게 긋는 게 중요했다. 부연하자면 여기에서의 핵심은 길고 곧은 직선, 촘촘하고 가지런한 선을 긋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선 긋기를 반복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선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선의 집적으로 면을 만드는 데생에서 자신이 의도하는 선을 자유자재로 그을 수 있는 능력을 확실하게 기르게 된다. 어떤 선이든 원하는 선을 그을 수 있는, 그야말로 선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대학생쯤 되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조금 더 그 속내를 알아보면 입시미술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자기 개성을 살린 그림을 하고 싶다고 한다. 10이면 10명이 입시미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입시미술이라는 억압된 공부, 같은 걸(대상, 주제) 반복해서 그리는 공부가 싫고, 표현 기술의 숙달을 내세우는 틀에 박힌 형식적인 그림이 싫다고 한다. 나는 중3 때부터 학원에 다녔으니 입시 준비를 3년 넘게 한 셈이다. 입시미술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길게 경험했으니까 나 같은 사람은 판에 박힌 듯한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다.

학생들이 입시미술에 대해 지적하는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입시미술이라는 공부에서 학생들이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즉 배움의 의미 구성에 실패한다는 것, 이것이 진정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입시미술의 의미는 자신의 의도(구상)를 시각화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기르는 공부에 있다. 단 이러한 기본 능력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그것에 갇힌다는 말은 결국 배움이 온전치 못하다는 말이 아닐까. 나름의 의미를 얻었다면 오히려 더 표현이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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