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광주에서 피어나는 최영환 연출 <벚꽃동산> 사계절을 버텨내는 ‘우직한 집’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연극 벚꽃동산. 광주시립극단제공.
연극 벚꽃동산. 광주시립극단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광주'시립극단 에서 피어나는 최영환 연출 <벚꽃동산>은 사계절 버텨내는 우직한 집이라고 표현할만하다. 연출의 전작(前作)공연에서는 체홉의 온전한 텍스트를 무대로 이동해 전경화를 이루고 최영환 표 캐릭터를 구축해 4막을 튼튼한 벚꽂동산으로 설계하고 건축했다. 그만큼 연출은 효과적인 재료를 무대로 첨가하는 방식을 우회해 우직하게 허구의 집을 짓고 섬겨왔다. 그의 신앙의 마음처럼 말이다. 작가 텍스트의 설계 도면을 배치해내는 섬세함도 있다. 기초공사가 잘 된 것처럼, 그 집에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은 오래전부터 집을 지켜온 것처럼 온전한 인물이 되었다. 장면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뚝심으로 새로운 인물을 구현해 내고 배우의 연기가 그의 작품에서는 돋보인다. 기술의 현란함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최영환 연출 스타일과 작품은, 그만큼 살고 싶은 무대의 집이 되기에 작품의 잔상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 사계절 버텨내는 최영환 연출의 <벚꽃동산>

광주로 향하는 <벚꽃동산>은 1903년에 쓰고 러시아 모스크바 극장에서 초연된 후 체홉은 이듬해 눈을 감았다. 우리나라에서 체홉 작품이 공연된 것은 한국신극을 대표하는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가 1934년도 입센<인형의 집>과 더불어 선보인 것이 최초 서양 근대극을 소개하면서부터 한국연극은 체홉 영향 아래 있었다. 벚꽃동산은 120년 시간을 돌며 세계의 다양한 동산으로 무대를 설계하고 그리스 비극의 고전처럼 불멸의 집을 그려왔다. 체홉의 벚꽃 동산은 텍스트의 온전함으로, 동시대의 재해석과 실험성으로 시대적 의미를 변주하며 피고 지는, 나무가 아니라 동시대로 잉태(孕胎)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사계절 벚꽃동산으로 공연되어왔다. 작품은, 19세기 봉건 귀족의 붕괴와 계층 갈등,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현시대를 암시적으로 그리고 있다. 몰락해 가는 여지주(女地主) 라네프스까야(류바)는 과거 영광을 잊지 못하고 습관과 낭비벽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다 동산을 잃게 된다. 로빠힌은 벚꽃동산을 지키는 농노의 아들이다. 자본의 부를 획득해 주인의 땅인 벚꽃동산을 사들인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제테크의 달인이고 성공한 경영자다. 벚꽃동산은 4막으로 구성되어 많은 등장인물이 영지에서 살아가면서도 로빠힌과 라네프스까야가 극의 중심인물이다.

1막의 시간의 시점은 5월의 봄이다. '아이의 방'에서 하녀 두냐샤와 상인(경영자)로 성장해 재산을 모은 로빠힌은 5년 만에 파리에서 돌아오는 지주 라네프스까야를 기다리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아들마저 물에 빠져 죽은 후 애인과 파리로 갔다가 적응할 수 없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애인마저 바람나자 빛 때문에 경매로 넘어가는 벚꽃 동산이 있는 자신의 영지(領地)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1막에서는 앙녀 바랴와 딸 바냐, 오빠 가예프, 노쇠한 하인 피르스가 등장하고 라네프스까야의 삶의 욕망은 과거로 박제되어 있다. 강물에 빠져 죽은 아들 죽음은 기억으로만 존재되어 그녀 삶의 욕망과 미래는 어린 시절 기억으로만 투영된다. 또한 로빠힌은 빚더미로 벚꽃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산과 강가의 토지를 별장으로 활용해 수입을 올리자는 구체적인 플랜을 내놓고 제안하게 된다. 라네프스까야에게 대를 이은 집을 철거하고 벚나무들을 잘라버린다는 것은 삶의 욕망을 거세하는 두려움이다. 두려울수록 인간의 삶은 과거 기억으로 재생되고 욕망은 집착되는 비현실적인 내면성을 보이게 된다.

1막에서 남편과 아들의 죽음, 과거 어린 시절 기억, 불행한 삶의 내면을 꺼내지고 벚꽃 동산의 위기와 변화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경매를 통해 서서히 몰락하게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19세기의 화려한 환영과 미망에 사로잡혀 시대가 전환되고 자본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한여름의 벚꽃동산 2막부터는 주변 인물들의 애정 방식이 극을 끌고 간다. 아샤와 에삐호도프는 두냐샤 관심을 끌기위해 애쓴다. 바랴는 겉으로 무관심한 척 하면서도 로빠힌과 결혼하라는 주변 사람들 권유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로빠힌은 영지를 구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얘기하며 가족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라네프스까야는 경제적 어려움과 파리의 애인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나타내고 있고 로빠힌과 바냐만이 새로운 시대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3막부터는 벚꽃동산 경매의 시간이다. 로빠힌한테 소유권이 넘어가게 된다. 무대는 경매를 기다리며 파티가 열리고 라네프스까야는 경매장으로 간 가예프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장면이 스쳐 갈 때쯤, 벚꽃 동산이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로파힌은 "내가 샀습니다. 벚꽃 동산은 이제 내 것입니다" 감격하고 바냐는 엄마한테 벚꽃 동산을 떠나자고 말한다. 경매가 진행되는 시간, 라네프스까야는 여지주로 소유권을 지키기 위한 그 어떠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며 방관자적 태도를 보인다. 운명의 시간에도 이들은 술과 노래, 마술로 무도장의 흥겨움으로 귀족 사회의 붕괴와 균열을 들어내고 몰락해간다. 4막은 10월의 가을이다. 황량하고 공허감이 감돌며 춥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떠날 준비는 하는 모습들이 그려지고 바냐는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동산의 나무를 자르지 말라고 부탁한다. 가예프와 파리로 돌아가는 라네프스까야는 벚꽃동산이 팔려 오히려 안정되고 활기가 띤다고 말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바랴와 로빠힌은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되고 도끼로 벚나무를 찌고 내려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올 때쯤 피르스가 노쇠한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문이 잠긴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감긴 문 앞 소파에 그대로 앉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가 심긴 예전 주인인 가예프를 걱정하며 자리에 눕는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피르스마저 소파에 누운 채 움직이질 않고 죽음을 예견하는 적막 사이로 동산의 벚나무를 찍어대는 요란한 소리만 들리고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몰락하고 소멸되어가는 영지는 파괴된 벚꽃 동산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를 상상하게 하고 마지막 남은 노쇠한 한 사람(피르스)의 삶도 죽음의 땅으로 소멸되어 간다.

연극 벚꽃동산. 광주시립극단제공.
연극 벚꽃동산. 광주시립극단제공.

◆ 벚꽃동산의 몰락, 시대를 상상하는 즐거움

체홉의 벚꽃 동산은 읽기와 해석의 방식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삶이 때로는 희극적이면서도 소극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시대의 우울과 비극적 현상을 투영할 수 있는 벚꽃 동산으로 투영되어 왔다. 어느 작품에서는 벚나무 동산의 거대한 전경화가 극의 분위기를 압도했고, 5월 초봄에서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장막의 분위기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벚꽃 동산의 삶으로 상징시키기도 했다. 또는 라네프스까야 집 구조를 쇠퇴해가는 시대의 종말적 현상으로 바라보기도 했고, 행복과 죽음의 기억으로 라네프스까야 내면을 배회하는 '아이의 방'과 대비시켜 봉건귀족 사회의 종말과 시대의 전환을 그려내기도 했다. 특징적으로 벚꽃동산을 그려내는 방식은 벚나무의 전경화, 집의 구조와 아이의 방, 벚나무를 내려치는 몰락과 죽음(도끼)의 소리, 로빠힌과 극 중 인물의 새로운 해석과 죽음을 예견하는 피르스의 마지막 등장 정도였다.

텍스트 설계도에 변화를 준다고 해서 체호프의 벚꽃동산의 의미가 살아나고 동시대를 타격하는 강렬한 파열음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체홉 텍스트를 온전하게 연극적 미학으로 구현해 내는 연출의 섬세한 시선도 의미가 크고 희·비극적으로 120년 동안 세워지고 소멸하는 벚꽃 동산의 개간(開墾)을 일군 것은 극 중 인물로 발열되는 배우들이 체홉 동산의 주인들이다. 그런 만큼, 광주시립극단의 배우와 단원들은 그동안 숙련된 연기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왔고 무대에서 수많은 집과 삶을 그려낸 배우들이다. 최영환 교수는 그동안 텍스트를 섬세하게 읽고 무대로 구현해 내는 듬직한 힘이 있었고, 배우들의 역량과 연기력으로 다양한 무대의 집을 설계하고 그려왔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에서 피어나는 최영환 연출의 <벚꽃동산>은 한국사회 사계절을 버텨내는 우직한 집이다. 4월27일부터 29일까지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에서 공연된다. 광주시립극단 대표적인 배우들이 총 출동된다. 체홉 명작은 중,고교생들에게 유익하다. 볼만한 공연이다.

벚꽃동산 연습장면. 광주시립극단제공.
벚꽃동산 연습장면. 광주시립극단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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