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퀴벌레가 된다면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어느 날 아침,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무시무시한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체코 작가 카프카(Franz Kafka)의 단편소설 '변신'의 첫 문장이다. 잠자는 자신의 방에 철저히 고립된다. 밖으로 나가 가족 품에 돌아가려 하지만, 가족에게 저지된다. 잠자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는다. 그때 생긴 상처가 덧나서 비참하게 죽는다.

방에서 벗어나려는 잠자의 시도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비록 벌레가 됐지만, 가족으로 받아달라는 애절한 소망이다. 가족은 잠자를 차갑게 뿌리친다. '변신'은 인간성 상실, 물질 만능, 실존 문제 등을 떠올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잃은 가장의 몰락 과정을 담았다는 해석도 있다.

"엄마, 내가 바퀴벌레 되면 어떻게 할거야?" 자식들이 부모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받은 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놀이가 MZ세대에게서 유행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얼마 전 딸이 이 질문을 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글쎄, 어떻게 해야지…." 졸지에 자식의 불행 앞에 주저하는 아비 꼴이 됐다. SNS에서 본 다른 부모들의 대답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한 누리꾼은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케이지를 만들어서 넣어준다고 했다"고 올렸다. "바퀴벌레는 혼자 할 수 없는 게 많으니, 어린 시절처럼 돌봐주겠다"는 얘기는 훈훈하다. "바퀴벌레가 된 자식을 가슴에 붙이고 다니겠다"는 대답은 따뜻하다. 많은 부모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세스코를 부른다" "잘 먹여서 키운다" 등 웃음을 주는 글도 있다.

'바퀴벌레 놀이'는 한 트위터 사용자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고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그의 어머니는 "너인 줄 알면 사랑하겠지"라고 답했다. MZ세대는 왜 바퀴벌레 놀이를 할까? 재미로 하는 것이라지만, MZ세대의 아픔이 묻어 있다. 바퀴벌레가 된다는 건 최악의 불행이다. 취업난, 주거난, 미래 불안으로 고통스러운 MZ세대가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아픔이다. 그걸 무겁지 않게 다루는 건, MZ세대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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