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에 있는 올케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보훈처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버님을 대전의 현충원이나 영천의 호국원에 모실 수 있다고 하네요. 어머님도 함께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버지는 1985년 예순둘,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적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 38년째다. 1922년생이니 1백여 년 전 태어나서 2차 대전과 6·25전쟁, 4·19와 5·16, 민주화운동까지 격변기를 온몸으로 겪으셨다.
1985년 추석 며칠 후, 그동안 입원해 계시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았다. 친정에 도착했을 때는 힘겹게 마지막 숨을 쉬고 계셨다. 의사인 동생이 사망선고를 내리고 두 눈을 감겨 드렸다. 빈소를 차리고 밤이 깊어 대청에 앉아 있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대청마루를 몇 바퀴 돌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애틋한 작별 인사인 것 같았다.
경북 김천시 금릉군 농소면 덕곡동이 본가인 아버지는 일찍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만주와 중국으로 떠돌아다니시자, 큰댁에 얹혀 지내게 되었다. 갖은 고생 끝에 할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와 교편을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6·25전쟁이 터지고 아버지는 육군에 입대하였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 아버지는 총알이 허벅지에 박히는 상처를 입고 제대했다. 그 흉터는 평생 남아, 날씨가 흐리거나 장마철이면 몹시 힘들어하셨다. 어릴 적 장롱을 열면 훈장이 잔뜩 달린 멋진 군복이 걸려 있었다. 무궁화가 두 개 달린 모자. 육군 중령으로 예편하셨다.
아버지는 전쟁에 대한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아버지 상처의 비밀은 한참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1·4 후퇴 때 중공군에게 쫓겨 내려오는데 왜관 근처에서…"
어릴 적 길거리에선 상이군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쪽 손에 손 대신 갈고리를 쓰거나,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텅 빈 구겨진 바짓가랑이를 흔들며 애들에게 거칠게 소리 지르는 상이군인들. 멀리서 그 모습이 보이면 겁이 나서 도망쳐 다니곤 했다.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팔다리를 잃은 채 돌아와 내팽개쳐진 그들의 원망과 슬픔, 돌아보지 않는 나라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걸 어린아이인 내가 알 리 없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직장인 학교로 돌아갔다.
나라의 기틀을 닦고 국민들이 절대 가난에서 벗어나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는 시간이 왔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고 공과를 가리며 뿌리를 바르게 세우는 일은 가정이나 나라가 다르지 않은가 보다 싶었다. 2010년, 돌아가신 지 25년 만에 뒤늦게 보훈처로부터 두 건의 '은성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머지않아 절차가 진행되어 부모님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날, 온 가족이 모여 아버지를 조국의 품으로 돌려 드리려 한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나라의 품에 전우들과 함께 편히 잠드시길 기원하며, 스물다섯 명의 가족이 모두 모여 두 분께 인사드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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