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가정폭력으로 이혼·가출한 딸 대신 아픈 손자 둘 떠맡아

비참한 결혼 생활에도 하나뿐인 딸 보며 버텼는데…딸도 결혼 실패
폭력 일삼은 사위, 첫째 아이한테도 떼 쓴다며 뺨 사정없이 때려
손자들 건강도 안 좋아…1명은 매일 네뷸라이저 입에 대고 있어야

지난 21일 오전 8시 전염선(가명·70) 씨가 학교에 가는 두 손자를 배웅하고 있다. 할머니 심정도 모르고 두 아이는 해맑게 장난을 치기에 바빴다. 윤정훈 기자
지난 21일 오전 8시 전염선(가명·70) 씨가 학교에 가는 두 손자를 배웅하고 있다. 할머니 심정도 모르고 두 아이는 해맑게 장난을 치기에 바빴다. 윤정훈 기자

고독한 이에게 명절은 재난이다. 평소 익숙했던 고독에도 눈물이 범람하고, 꿉꿉한 상념이 피어오른다.

지난 설날 전염선(가명·70) 씨는 하루를 가만히 누워서 보냈다. 밥 먹을 시간이 돼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내 단념한다. 자신이 홀로 끼니를 때울 때, 누군가는 자식, 손자들과 괜찮은 식당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자세를 고쳐 돌아누우니 새로 산 공기청정기가 보인다. 정신이 이상해진 딸이 원래 있던 걸 부숴버리는 바람에 새로 장만한 것이었다.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이번엔 손자가 쓰는 네뷸라이저(호흡기 치료기)가 눈에 들어왔다. 건강이 안 좋은 두 손자는 각자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할지,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눈을 감았다.

"할머니, 아빠는 엄마 괴롭히다 지옥불에 떨어진 것 같아. 그치?"

언젠가 첫째 손자가 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괴롭다. 아무리 해도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염선 씨는 우울증 약을 꺼내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10살에 '엄마' 돼야 했던 삶, 결혼생활도 불행… 딸은 행복하길 바랐지만

엄마의 하혈이 시작된 건 염선 씨가 10살 때였다. 자궁근종이었다. 4남매 중 맏딸이었던 염선 씨는 그때부터 엄마 대신 엄마가 됐다. 초등학교 중퇴 후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아픈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보살폈다. 아빠의 과수원 일도 가끔 거들었다. 10살 소녀가 짊어지기엔 버거운 삶이었다. 2년 뒤 엄마는 결국 염선 씨를 두고 하늘로 떠났다.

고단한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성인이 된 염선 씨. 중매로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한 남자를 만나게 됐다. 그는 "내가 지금 직장은 없지만, 모자 만드는 기술이 기가 막힌 게 하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저 날백수의 허세였다. 그래도 염선 씨는 믿었다. 믿고 싶었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자신에게 간신히 내려온 동아줄인데, 썩은 것이라 생각하기 싫었다. 염선 씨는 23살에 그와 결혼했다. 결혼 후 남편은 모자 대신 애인만 잔뜩 만들었다. 바람만 피웠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돈 한 푼도 주지 않고 밖으로 나돌아다녔다. 하는 수없이 염선 씨가 식당 일을 하며 홀로 아들과 딸을 키워야 했다.

비참한 결혼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한 건 자식들이었다. 특히 하나뿐인 딸이 자신과 달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염선 씨의 꿈이었다. 한의원 간호사로 일하던 딸 구재민(가명·43) 씨도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었을 테다. 재민 씨 또한 중매로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다행히 '직업군인'이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는 남자였다. 그가 직업뿐 아니라 2억7천만원의 빚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결혼 후에 알게 됐다. 사돈 어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물려받은 빚이었다.

그나마 딸에게 잘 했다면 사위를 안타깝게 여길 수 있었겠지만, 사위는 툭하면 딸에게 가정폭력을 일삼곤 했다.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5년 전 어린이날에 첫째 아들 홍준(가명·10)이가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하자 떼를 쓴다며 아이의 뺨을 사정 없이 후렸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 남편만 믿고 따라간 딸이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남편의 폭력이 이어지자 활발했던 딸의 정신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맞던 중 아파트 옥상으로 달려가 뛰어내리려고 한 적도 있다.

◆극단적 선택 7번 시도한 딸은 현재 가출, 나이 칠십에 홀로 손자 2명 키워

딸은 총 7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딸이 약을 먹어 실려간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상황을 알게 된 염선 씨는 2019년 딸과 손자 2명을 대구로 데려왔다. 재민 씨는 같은 해 남편과 이혼했지만, 우울증과 조울증은 더 심해졌다. 딸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누워서 잠만 잤다. 그러다 깨면 집안 물건을 부수고, 다가오려는 염선 씨를 향해 물건을 던졌다. 하루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파출소에 신고까지 했다. 염선 씨는 딸을 피해 두 손자를 데리고 근처 여성보호기관에서 며칠 지내기도 했다. 그전엔 사위로부터 딸을 보호했다면, 지금은 딸로부터 두 손자를 지켜야 했다. 현재 딸은 가출해 지인 집에서 지내며 정신이 온전할 때만 가끔 찾아온다.

홍준이, 예준이(가명·8)를 키울 사람은 염선 씨밖에 없었다. 나이 칠십의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아이 둘을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릎관절염이 심해 두 쪽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 후 입원기간 동안 손자들을 돌봐줄 곳이 없어 시도도 못하고 있다. 경미하지만 청각장애 증상도 있고, 당뇨질환으로 꾸준히 병원에 다니며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오랜 세월 집안일에 시달려서인지 허리도 안 좋아 늘 복대를 차야 된다.

아이들 상태도 좋지 않다. 애초에 홍준이는 1.6kg로 태어난 저체중 출생아였다. 선천적으로 폐가 덜 완성된 채로 태어났다. 그래서 하루에 3번 10분씩 네뷸라이저를 입에 대고 있어야 한다. 의사에게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평생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울러 1년에 한번은 보름 정도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고, 엄마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봐왔기에 정신적으로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예준이 또한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지난해 3월 '갑상선 저하증' 진단을 받고 근처 아동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갑상선 호르몬이 잘 생성되지 않아 앞으로 키가 잘 안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측정한 예준이의 키는 지난해 110cm에서 1cm도 자라지 않았다.

첩첩산중으로 재작년 사위가 세상을 떠나며 9천500만원 정도의 부채가 넘어와 가정법원 통지서가 날아오고 있다. 두 손자 양육만으로 이미 벅찬 상황에 상속포기 등 각종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해 법무사 상담까지 받으러 다니고 있다. 기초연금 30만원, 기초생활수급비 140만 등 한 달 170만원으로 아픈 자신과, 아픈 두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이마저도 월세 20만원, 부채상환비 45만원, 그 외 식비, 공과금, 교통비 등을 다 내면 빠듯하다.

어쩌다 떠맡게 됐지만 그래도 피붙이였다. 두 손자 교육에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어 올해 노인일자리 사업에 지원했으나 탈락하고 말았다. 염선 씨는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서로 장난치느라 바쁜 두 손자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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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건강했던 아내 수면 중 심장마비로 허무하게 보낸 뒤 전국 방랑하다 마음 다잡고 펼친 사업도 실패해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최철 씨에게 2천53만원 전달

건강했던 아내를 심장마비로 허무하게 보낸 뒤 전국을 방랑하다가 마음 다잡고 펼친 사업도 실패해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최철(매일신문 4월 11일자 10면) 씨에게 2천53만8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흥국시멘트 5만원 ▷장영은 10만원 ▷방순옥 4만원 ▷이종일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장수진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성옥 1만원 ▷김진만 1만원 ▷이아영 1만원 ▷정영선 1만원 ▷'해만진주이안' 2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늦은 결혼 끝에 얻은 아들 희귀병 '두개골유합증' 걸리고 수술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간병인에게 아동학대까지 당해 마음 아픈 김대덕 씨에게 2,235만원 성금

늦은 결혼 끝에 얻은 아들이 희귀병(두개골유합증)에 걸리고 수술을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간병인에게 아동학대까지 당한 김대덕(매일신문 4월 18일자 10면) 씨에게 47개 단체, 134명의 독자가 2천235만4천400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세원정공물산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아트빌리지(신홍식)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찬종)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제일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우리연합내과(김종빈)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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