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현진건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오철환 (사)현진건기념사업회 이사장

오철환 (사)현진건기념사업회 이사장
오철환 (사)현진건기념사업회 이사장

격변하는 시대에 대구에서 태어나 나라도 없는 엄혹한 시절을 살다가 광복의 기쁨도 느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신 지 어언 80년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는 그날을 위하여 민족의 정기를 잃지 않으시고 올곧은 삶을 꿋꿋하게 지켜 내신 선생님의 결연한 모습이 완연히 떠오릅니다. 그 혼란한 세상,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사회 부조리를 질타하는 작품을 쏟아 내셨다니 선생님의 굳센 의지와 민족과 문학에 대한 애정이 어떠하였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감동을 줍니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지혜가 그 작품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향'을 읽으면서 느꼈던 대구의 거친 체취와 선생님의 따스한 숨결을 다시 되살려 보고자 합니다.

자리에 몸져누운 아내에게 주려고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들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운수 좋은 날' 김 첨지의 뒷모습과, 전통적 유교관에 젖어 아녀자를 멀찍이 뒤로 두고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빈처' 속 나의 하릴없는 뒷모습이 눈앞에서 오버랩됩니다. '술 권하는 사회'는 또 어떻고요. 암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서로에게 술을 권할 수밖에 없는, 희망을 잃은 식민지 지식인의 독한 슬픔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예감한 예지적 통찰력에 눈을 크게 뜨고 맙니다. 그런 연유인지 '술 권하는 사회'는 부조리한 사회를 비아냥거리는 상징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랍니다.

암담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일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도구가 단편소설이었다면 역사 속 인물을 통해 민족혼과 독립 정신을 일깨운 무기는 역사소설이었던 듯합니다. '무영탑'에서 민족혼을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쓰신 몸부림의 자취를 발견하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또 '흑치상지'에서 백제부흥운동을 본받아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고 그 꺾이지 않는 결기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일제의 감시와 검열을 피하고자 애쓴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띄는지라 당시의 무거운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빼어난 작품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인간을 단련시키고 지혜롭게 한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은 고난과 시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부딪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자 하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후손들에게 마음의 스승이 되시고 문인의 사표가 되신 것이겠지요. 이에 부족한 후배들이 '사단법인 현진건기념사업회'를 꾸려 선생님의 삶을 기리고 그 업적을 고창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더라도 앞으로 조금씩 더 채워 가고자 합니다. 하늘에서 지켜보시고 저희가 하는 일이 창대해지도록 이끌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선생님의 80주기를 맞아 차가운 문학비 앞에 선 지금, 그 올곧은 정신과 빼어난 문재가 더욱 그립습니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돼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오늘 밤엔 하늘을 보면서 선생님의 별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문학이 가야 할 지점은 어디인지 감히 여쭤 보고 싶습니다. 문학의 길을 가는 붉은 마음과 선생님을 기리는 마알간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상히 여겨 주신다면 부디 사랑으로 격려해 주시길 앙망합니다. 존경하는 빙허 현진건 선생님! 끝으로 진심을 다해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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