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회화 이야기 4-그리기와 말하기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신경애 화가

말이 많은 사람은 싫다. 말이 앞서는 사람도 싫다. 보편적으로 다들 그렇겠지만 말보다는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이번에는 색과 형처럼 회화 화면에서의 실재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말을 창안하는 일이며 자신과 혹은 타인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이야기이다.

화가들은 인상적인 말을 많이 남겼다. 피카소(P. Picasso)도 그런 한 사람이다. 피카소는 작품을 그냥 보라고 했다가 그와 반대로 읽어보라 했다가 우왕좌왕했다.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피카소의 의견은 사실 둘 다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보아야 하면서 어떤 지식과 정보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야 비로소 이해되는 게 미술이다. 즉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보면 알게(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설명이 없으면 무엇을 표현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설명이 꼭 필요한 게 미술이다.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니다.

한참 전에 나는 피카소의 입체주의(Cubism) 그림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10년은 되었을 그때 나와 남편은 식사 자리에 초대 받았다. 운전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다니는 그 사람은 피카소 작품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기를 꺼린다. 용기 있는 그의 질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사물,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미술에서 벗어난 현대미술(Modern Art)의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전면, 측면, 후면(3차원의 세계)을 한 화면에 담게 된 결과 다시점 회화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열심히 말하다가 보니 겨드랑이가 흥건했다.

나의 열띤 이야기로 무르익은 식사 자리가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그래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이게 뭐지, 내 설명이 부족했나, 하고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어떤 말을 하면 되는가. 20세기 이후 미술이 말을, 설명을 필요로 하면서 점점 일반인들과 괴리돼 간 것은 사실이다. 미술은 보는 거지 읽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이 경험을 회상한다. 다시 또 누군가 미술이 어렵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같은 태도를 보일 것이다. 성심성의껏 말하기에 임할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이외에는 중요한 것을 말할 방법이 없을 때가 있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화가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자신 혹은 타인과의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의 난해성은 다름 아닌 화가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미술이 좀 더 잘 가르쳐지길 바라지만 그것만 기대할 수는 없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귀를 닫고 있는 사람도 참 많다. 그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기처럼 말하기도 화가가 자신이 만들어 낸 표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문제가 아닐까.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